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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호저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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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서강에 대한 개항에 거부감이 없었나요?

일본이 임진왜란 당시에 사용하던 조청은 포르투갈로 부터 전해졌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개항이 굉장히 빨랐던 것 같은데 조선과 같이 반발은 없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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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소한토르키레우스91
    소소한토르키레우스91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에도 막부 시기에는 서양과의 교역을 금지하고 있었으나, 네덜란드와는 무역을 허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큰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총말씀이신가요?

    물론 일본도 반발 투성이였습니다

    흑선도착전까진 데지마라는 작은 인공섬에서 한 나라의 사람하고만 교역했고

    이 데지마도 열렸다 닫았다 했습니다.

    다만, 무역이 이득이 될 수 있는건 사실이고

    고려시절의 활발한 무역을 중국의 해금령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조선과는 다르게

    (고려,신라시절엔 페르시아랑도 교류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직도 한국은 영어로 고려=코리아 인거죠)

    섬나나라서 해금령의 영향도 적고 해류도 배타고 다니기 좋아서

    딱 한곳이나마 개항을 했던거죠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과 서민의 생활과 인식 수준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적어도 일본의 집권층은 국제 정세를 정확하게 직시했다고 합니다. 보신 전쟁부터 애초에 근대화 할거냐 말거냐 이걸로 싸운거 아입니다. 근대화를 해야된다는 필요성은 당시 막부측이나 유신측이나 너무도 당연하게 초당파적으로 이해하고 있었고, 애초에 이런 시대적 공감대가 있었던 덕분에 카츠 카이슈부터 에조 공화국의 수괴 에노모토 다케아키까지 패배한 막부측 인사도 대부분은 큰 문제 없이 신정부에서 등용, 재능을 필 기회를 마련해주었던 것 입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본은 특유의 제노포비아로 인해 외국인과 외래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많습니다.

    현대 일본의 예만 들어봐도 외국인에게 집을 안 빌려준다거나 하는 것이며

    일본인들은 예측 가능한 안정된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에 큰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하는데

    양면성이 있는듯 하니 유심히 관찰 해야 할듯 합니다.

    우리나라에 쳐 들어온것은 무슨 심보인지요.

  • 안녕하세요. 염민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당시 일본은 다양한 국가와 무역을 하면서 개항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전국시대라 불리우는 혼란스러운 시대였기에

    군사력을 증진시키는 조총과 같은 무기를 별 거부감 없이 쉽게 받아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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