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수양대군은 한명회 책사와 계책으로 조카 단종 왕위 찬탈하고 왕이되어 세조 왕위 받은 인물로 당시 조선 사회는 유교적 명분, 적장자, 정통 계승 등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당시 민심은 도의적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즉위 분위기 였으며 초반에는 왕은 바뀌었지만 민심은 바뀌지 않았을 정도로 좋지 않았고 여기에 사육신과 생육신 사건으로 지식인과 유학자 계층의 민심은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세조는 그 성격 만큼 법과 제도 정비하고, 군사력 강화로 불만 커지지 않게 관리 했으며 중반 이후 국가 기틀 안정적으로 만들고 법전 정비하며 민심은 체념하고 수용하는 방향으로 변했습니다.
세조는 비록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권을 찬탈 한 인물 이지만 태종 이방원이 자기 형제들을 죽이고 왕이 되어서 업적을 많이 싸았듯이 세조도 비록 조카를 죽이고 왕이 되었지만 왕권 강화와 더불어 민생 안정을 위한 업적도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그 해에 농사의 수확량과 토지의 비옥도를 기준으로 차등해서 세금을 내는 공법 등의 시행으로 백성들의 부담을 줄이고자 한 노력도 있었습니다.
그게 참 복잡한 문제인게 사실 단종을 그렇게 보냈으니 유교 사회에서 여론이 좋을리가 있나요 사육신 사건이나 금성대군 일도 있고 해서 선비들 사이에서는 정말 눈밖에 났던 임금이었죠 그래도 나라 기틀을 잡는 법전도 만들고 국방도 챙기고 해서 백성들 사는건 또 나쁘지 않았다는 말도 들리긴 하더라구요 권력 잡는 과정은 무서웠어도 나랏일은 꼼꼼하게 챙긴 편이라 민심이 아주 바닥은 아니었을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