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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철한불독44
냉철한불독44

세종대왕님이 지시해서 편찬된 구황벽곡방에는 어떤 내용이 작성되었나요?

조선시대 세종 임금 시설에 오랜 가뭄과 기근으로 굶어죽는 백성들이 늘어나자 세종대왕님의 지시로 구황벽곡방이라는 책을 편찬했다는데요. 어떤 내용들이 적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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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명종 때에 영호남에 기근이 극심하였다. ≪구황촬요≫는 기근을 구제하기 위하여 언해본(한글)으로 진휼청의 인포(印布)로 나온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초기부터 흉년을 만나면 구호 사업이 실시되었다. 이러한 구호 사업과 함께 생식벽곡(生食辟穀)과 구황요기(救荒療飢)의 방법이 세종 때부터 여러 가지 책자로 간행, 보급되었다. ≪구황벽곡방 救荒辟穀方≫이 세종의 편집으로 간포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존하지는 않는다, 그 내용은 ≪구황촬요≫에 많이 인용된 것으로 생각된다. ≪구황촬요≫의 초판본은 총 17면이다. 경주에서 목판본으로 발간되었다고 한다.


    ≪구황촬요≫는 효종 때에 신속(申洬)이 합편으로 간행한 ≪농가집성 農家集成≫에 부록으로 포섭었다. ≪농가집성 農家集成≫은 신속의 저작인 ≪구황보유방 救荒補遺方≫과 원간인 ≪구황촬요≫가 합쳐진 내용이다. 1639년(인조 17)에는 김육(金堉)의 합편 ≪구황벽온방 救荒辟瘟方≫이 나왔다. 이것은 원본 ≪구황촬요≫와 ≪벽온방언해≫를 합친 것이다. 1660년(현종 1)에 ≪구황보유방 救荒補遺方≫과 원간인 ≪구황촬요≫는 ≪신간구황촬요≫라고 하여 목판으로 각지에서 인본되었다. ≪구황촬요≫의 원류는 세종 때로 거슬러올라갈 수 있다. 명종 때에 언해본으로 그 명칭이 굳혀졌다. 그 뒤에는 이와 유사한 책 또는 농(農) 및 의(醫)에 관한 책들과 합편되거나 따로 간행되어 내려왔다. 또한, 그 동안에 합본 증보되었고 ≪고사촬요 攷事撮要≫·≪산림경제후생록 山林經濟厚生錄≫·≪증보산림경제≫ 등의 여러 서적에 인용되기도 하였다.


    ≪구황촬요≫ 초판의 내용은 빈사 상태에 있는 사람을 소생시키는 법, 굶주려 종기가 난 사람을 치료하는 법, 느릅나무껍질을 벗겨 즙을 만드는 법, 솔잎죽을 만드는 법, 느릅나무껍질로 떡 만드는 법, 말린 밥 만드는 법, 천금주 빚는 법, 곡식가루를 내는 법, 장 담그는 법, 쌀가루를 만드는 법 등이 기록되어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