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고려는 왜 호족 연합 정권으로 시작했다고 평가받나요?

고려 건국 초기에 왕건이 강력한 중앙집권보다 지방 호족들과의 연합을 통해 나라를 세웠다고 배우는데, 왜 이 시기에 이런 연합적 정치체제가 불가피했는지 궁금합니다.

2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

    고려 태조 왕건 또한 호족세력이었습니다. 신라 말기에는 중앙의 권력이 약화 되자 지방에는 사병을 거느린 호족들이 강성해졌습니다. 이렇게 수없이 생겨난 호족들은 나름 자신들의 지역에서 방귀 꽤나 뀌던 세력이기에 이들을 모두 하나로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죠.

    특히나 궁예가 강력한 카리스마로 그들을 규합하려 하였으나 결국 쫓겨나고 왕건이 추대된 그런 상황이라 왕건은 마음대로 왕권을 휘두를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각 지방의 유력한 호족들과 혼인관계를 맺음으로써 왕으로서 권위를 인정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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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택된 답변
  • 신라말 중앙의 진골 귀족이 왕위 쟁탈전을 벌이면서 지방에 대한 통제권의 약화로 호족이 성장했습니다. 호족 세력은 후삼국 시대로 이어졌으며,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은 호족들의 협력을 통해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습니다.

    태조 왕건도 송악의 호족에 불과했습니다. 따라서 그도 스스로 강력한 중앙집권적 세력을 갖추지 못했던 것입니다. 당시 호족들은 각자 사병을 거느리고 있었으므로 통일 전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호족의 협력이 필수적이었습니다.

    따라서 태조 왕건은 통일 직후 호족 우대를 통해 왕건을 안정시킨 것입니다. 예를 들어 왕건은 29명의 호족의 딸과 혼인 관게를 맺었으며, 관직 수여와 사성을 시행했습니다.

    즉, 고려는 외형적으로는 중앙집권처럼 보였으나 내용적으로 호족들의 협력을 통해 국가와 왕실의 안녕을 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