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말 중앙의 진골 귀족이 왕위 쟁탈전을 벌이면서 지방에 대한 통제권의 약화로 호족이 성장했습니다. 호족 세력은 후삼국 시대로 이어졌으며,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은 호족들의 협력을 통해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습니다.
태조 왕건도 송악의 호족에 불과했습니다. 따라서 그도 스스로 강력한 중앙집권적 세력을 갖추지 못했던 것입니다. 당시 호족들은 각자 사병을 거느리고 있었으므로 통일 전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호족의 협력이 필수적이었습니다.
따라서 태조 왕건은 통일 직후 호족 우대를 통해 왕건을 안정시킨 것입니다. 예를 들어 왕건은 29명의 호족의 딸과 혼인 관게를 맺었으며, 관직 수여와 사성을 시행했습니다.
즉, 고려는 외형적으로는 중앙집권처럼 보였으나 내용적으로 호족들의 협력을 통해 국가와 왕실의 안녕을 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