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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를 포기한 부모에게 자녀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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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현수 변호사


수원지방법원 2026. 6. 8. 선고 2024가단576564 판결 해설

중증 질환을 앓는 자녀의 수술 여부를 결정하는 일은 부모에게 가장 무거운 선택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부모가 수술 대신 보존적 치료를 택했고 자녀가 끝내 사망했다면, 그 결정을 두고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요. 최근 수원지방법원은 이혼한 어머니가 자녀를 키워 온 아버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하면서 이 문제에 대한 판단을 내놓았습니다.

사안은 이렇습니다. 원고와 피고는 1999년 혼인해 아들을 두었으나 2001년 협의이혼을 했고, 피고인 아버지가 친권자가 되었습니다. 아들은 어려서부터 결절성 경화증으로 인한 지적장애와 뇌병변장애를 앓았습니다. 결절성 경화증은 유전자 이상으로 종양 억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뇌, 신장, 심장 등에 종양이 생기고 뇌전증과 지적장애가 동반되는 질환입니다. 아들은 2014년 뇌실 내 종양 소견을 받았고, 대학병원 신경외과는 2019년부터 여러 차례 수술적 제거를 권했습니다. 그러나 수술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고, 아들은 2022년부터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2024년 2월 사망했습니다.

원고는 피고가 수술이 필요하고 방치하면 사망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듣고도 수술을 거부했고, 요양병원에서도 필요한 조치를 거부해 아들을 숨지게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형법상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형법 제18조, 제250조) 또는 유기치사죄(형법 제275조)에 해당하므로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가 성립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들의 위자료 5,000만 원 청구권을 상속했다며 이를 청구했습니다. 특히 살인에 해당하면 피고가 상속결격(민법 제1004조 제1호)이 되어 원고가 단독상속한다는 논리였습니다.

진료기록 감정 결과만 보면 원고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듯했습니다. 감정의는 2019년 8월 당시 수술을 받았다면 수술 사망률과 합병증 발생 가능성이 각 1% 정도로 매우 낮고, 5년 이상 생존할 가능성은 95%에 이른다고 보았습니다. 시력 상실도 종양이 커지며 생긴 수두증과 뇌압 상승 때문이어서, 적기에 수술했다면 피할 수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습니다. 나아가 조기 사망의 주원인은 수술 거부로 인한 종양 합병증의 조기 발생이라는 소견까지 밝혔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피고가 적극적인 수술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부작위에 의한 살인이나 유기치사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법원이 주목한 사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피고는 치료를 외면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피고와 조부모는 2015년부터 약 7년 동안 여러 진료과를 오가며 상담과 검사를 받고 치료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수술 결정도 처음부터 거부한 것이 아니라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것이었습니다. 2019년에는 상태가 위급하지 않고 전신마취 뇌수술에 대한 부담이 커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2021년 11월에는 실제로 수술을 결정하고 입원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의료진으로부터 현재 증상은 대부분 결절성 경화증 자체의 진행 때문이어서 수술을 해도 호전되지 않고, 인지장애 개선이나 경련 예방 효과도 기대하기 어려우며, 수술은 생존 기간 연장만을 목표로 한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가족은 수차례 회의를 거쳐 보존적 치료를 택했고, 2022년 2월 다시 한 번 논의한 끝에 최종적으로 수술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또한 법원은 감정의가 함께 밝힌 결절성 경화증 환자의 사망 중위 연령이 28세 및 33세라는 점에도 주목했습니다. 적기에 수술을 받았더라도 사망이라는 결과를 피하거나 의미 있는 기간 동안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병의 특성을 종합해 가족과 진지하게 상의한 끝에 보존적 치료를 택한 이상, 이후 요양병원 주치의로부터 사망 가능성에 대한 설명을 듣고도 전원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살인이나 유기치사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법원은 원고의 입장도 짚었습니다. 피고는 선천성 장애를 가진 아들을 약 25년간 홀로 키웠지만, 원고는 이혼 후 아들이 숨질 때까지 한 번도 아들을 만난 적이 없었습니다. 아들이 어떤 증상과 어려움을 겪었는지, 수술을 해도 생존 가능성이 어느 정도였는지, 가족이 어떤 협의를 거쳐 수술하지 않기로 했는지 원고는 전혀 알지 못했고 관련 자료도 내지 못했습니다. 법원은 사망 후 드러난 진료기록 일부만 발췌해 고의적 범행이라고 보기는 부족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판결의 의미는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의학적으로 수술이 더 나은 선택이었다는 사후 감정 결과가 곧바로 보호자의 법적 책임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부작위에 의한 살인이나 유기치사가 성립하려면 결과에 대한 고의가 인정되어야 하는데, 법원은 보호자가 치료 과정에 성실히 관여했는지, 결정에 이르기까지 어떤 설명을 듣고 얼마나 숙고했는지를 중요하게 보았습니다. 둘째, 불치성 기저질환이 있는 경우 수술의 목적과 한계에 대한 의료진의 설명은 보호자 결정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핵심 자료가 됩니다. 진료기록에 남은 면담 내용이 결국 판단을 좌우한 셈입니다.

다만 이 판결은 단독재판부의 1심 판결이므로 항소 여부와 상급심 판단을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확정 여부 추가 확인 필요). 그럼에도 중증 장애 자녀의 치료 방향을 두고 고민해 온 보호자의 결정을 결과만으로 재단하지 않고, 그 과정 전체를 살펴 판단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판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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