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이혼하지 않은 외국인 배우자도 혼인단절자 체류자격을 받을 수 있을까
서울행정법원 2026. 8. 13. 선고 2025구단53041 판결 해설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은 결혼이민(F-6) 체류자격으로 국내에 머뭅니다. 그런데 결혼생활이 무너지면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출입국 당국은 "혼인의 진정성이 없다"며 체류기간 연장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 서울행정법원은 이런 거부처분을 취소하면서, 법률상 이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혼인단절자 체류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판단을 내놓았습니다.
사안은 이렇습니다. 외국인 남성인 원고는 2010년경 한국인 여성 C를 만나 이듬해 혼인신고를 했고, 아들도 태어났습니다. 원고는 2012년 결혼이민 체류자격을 받은 뒤 연장허가를 받아가며 국내에 머물러 왔습니다. 그러나 2012년경 C가 아이를 데리고 창원의 친정으로 간 뒤로 두 사람은 약 13년간 별거했습니다. C는 2018년 원고에 대한 신원보증을 철회했고, 2022년에는 협의이혼 절차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2024년 원고가 체류기간 연장을 신청하자, 서울출입국·외국인청장은 실태조사를 거쳐 혼인의 진정성이 없다는 이유로 불허했습니다.
원고는 먼저 처분서에 혼인의 진정성이 없다는 문구만 있을 뿐 구체적 이유가 없어 행정절차법 제23조의 이유제시 의무를 위반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법원은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처분서에 이유가 구체적으로 적혀 있지 않더라도, 전체 과정에 비추어 당사자가 처분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었고 불복에 지장이 없었다면 취소사유가 되는 절차상 하자는 아니라는 것입니다(대법원 2019. 12. 13. 선고 2018두41907 판결 참조). 원고는 처분 전에 담당공무원과 면담하며 동거·양육·이혼 의사 등에 관한 질문을 받았고 자료도 제출했으므로, 무엇이 문제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고 보았습니다.
법원은 혼인관계 자체에 대해서도 원고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처분의 적법성은 처분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합니다(대법원 2017. 4. 7. 선고 2014두37122 판결 참조). 원고는 혼인 진정성을 혼인신고 당시 기준으로 봐야 한다며 대법원 2022. 7. 28. 선고 2020므13975 판결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그 판결이 가사사건의 혼인무효 사유에 관한 것이어서 이 사건에 원용하기 적절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실제 혼인생활은 1년 남짓에 불과했고, 13년간 별거했으며, C는 지금도 이혼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었습니다. 법원은 정상적인 혼인관계가 이미 단절되었으므로 원고가 국민의 배우자 요건(출입국관리법 시행령 [별표 1의2] 제27호 가목)은 충족하지 못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결론은 원고의 승소였습니다. 핵심은 같은 [별표 1의2] 제27호 다목입니다. 이 조항은 국민인 배우자와 혼인한 상태로 국내에 체류하던 중 배우자의 사망·실종 등 자신에게 책임이 없는 사유로 정상적인 혼인관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된 외국인에게도 결혼이민 자격을 인정합니다. 흔히 혼인단절자(F-6-3)라고 부르는 유형입니다. 법원은 대법원 2019. 7. 4. 선고 2018두66869 판결을 인용해, 여기서 책임이 없는 사유란 외국인 배우자에게 전혀 잘못이 없는 경우가 아니라 혼인파탄의 주된 귀책사유가 한국인 배우자에게 있는 경우를 뜻한다고 보았습니다. 또 이런 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는 처분사유, 즉 주된 귀책사유가 한국인 배우자에게 있지 않다는 점의 증명책임이 행정청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건에서 파탄의 주된 책임은 누구에게 있었을까요. 법원은 여러 사정을 들어 C 쪽에 무게를 두었습니다. C는 아이의 퇴원 무렵 충분한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친정으로 가 별거를 시작했습니다. 원고가 부상으로 입원했을 때도 돌보지 않았고, 원고를 무시하거나 상처 주는 언행을 반복했습니다. 원고는 서울에서 함께 살자고 계속 요구했지만, C는 원고의 경제력을 탓하며 동거를 거부했습니다. 반면 원고는 2012년부터 2024년까지 꾸준히 돈을 보냈고, 아들도 아버지와의 교류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법원은 피고가 낸 증거만으로는 주된 귀책사유가 C에게 있지 않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법률상 이혼 여부에 관한 판단입니다. 출입국 당국은 법무부의 체류자격별 안내 매뉴얼이 혼인단절자를 사망, 실종, 이혼으로만 규정하고 있으니, 아직 이혼하지 않은 원고는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시행령 조문 자체는 이혼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정상적인 혼인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만 정하고 있습니다. 매뉴얼의 이혼이라는 표현도 이를 간략히 줄여 쓴 것에 불과하고, 오히려 제출서류로 소장 같은 이혼소송 서류를 들고 있어 법률상 이혼 전 단계도 전제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무엇보다 한국인 배우자의 잘못으로 혼인이 무너진 외국인을 인도적으로 보호하려는 제도의 취지에도 이 해석이 부합한다고 했습니다.
이 판결의 실무적 의미는 분명합니다. 한국인 배우자가 이혼에 응하지 않거나 이혼 절차가 지연되는 동안에도, 외국인 배우자는 파탄의 주된 책임이 상대방에게 있음을 들어 체류자격을 다툴 수 있습니다. 반대로 혼인의 진정성이 없다는 한 줄짜리 사유로 거부처분을 받은 경우, 소송에서는 혼인 단절 여부에 그치지 않고 파탄의 책임 소재가 핵심 쟁점이 됩니다. 따라서 별거 경위, 동거 요구 내역, 송금 기록, 자녀와의 교류 자료 등 귀책사유를 보여주는 증거를 미리 정리해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만 이 판결은 행정법원 단독재판부의 1심 판결이므로, 항소 여부와 상급심 판단은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확정 여부 추가 확인 필요). 그럼에도 행정청 매뉴얼의 문구보다 시행령의 문언과 입법취지를 앞세워, 이혼하지 않은 외국인 배우자에게도 보호의 문을 열어두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판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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