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학문

역사

아하그렇구나생각하면 아하!!
아하그렇구나생각하면 아하!!

신위주 반공학생사건은 무엇인가요?

신의주에서 일어난 반공학생사건이 있었다고 들었는데요.

이는 학생들이 신의주에서 어떠한 이유에서 사건을 일으킨 것인지 궁금합니다.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4개의 답변이 있어요!
전문가 답변 평가하기 이미지
전문가 답변 평가답변의 별점을 선택하여 평가를 해주세요. 전문가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 도도한듀공33
    도도한듀공33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의주 반공 학생 사건이 일어난 배경은 당시 소련 군정은 북한에서 상점을 약탈하거나 부녀자를 겁탈하는 전쟁 범죄를 일삼고 있었습니다.

    또한 소련 군정의 소련군과 공산당은 경금속 공장 직공을 동원해 기독교 사회 민주당을 급습했고, 평안교회 장로를 현장에서 죽이고 학생과 시민을 중상을 입히게 됩니다.


    이로인해 격분한 신의주 6개 중학교 학생 5,000여명이 소련군의 약탈과 공산당의 황포에 대한 반감으로 만세를 부르며 자유를 부르짖으며 반공을 외치게 된것이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공산당의 보안대와 소련군의 무차별 사격으로 23명이 피살되고 700명 중경상을 입고, 2,000여명의 학생과 시민이 투옥되게 됩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의주 반공 학생 사건은 북한 최초의 공산당 반대 항거 운동 사건 이였습니다. 소련 군정 당시 한반도 최북단 접경 지역인 신의주에서 북한 주민들에 대한 소련군의 행패는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소련군 병사들이 현지 여성들을 강간하고 소련 군정을 등에 업은 좌익 세력이 주민들을 수탈 하는 일이 비일 비재하게 발생하면서 공산주의에 대한 주민들의 염증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이러한 소련 군정의 가혹한 진압과 불성실한 사후 사건 처리는 주민들의 반발을 샀고 소련 군정과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이 신의주 일대에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격분한 신의주동중학교와 제일공립공업학교 등 6개 중학교가 주축이 된 지역 학생 3천500여 명은 1945년11월 23일 오후 2시, 반공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45년 11월 23일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중학교 학생들이 ‘공산당 타도’를 외치며 벌인 반소(反蘇)-반공(反共) 시위입니다.

    11월 18일 용암포 제일교회에서 소련군과 조선 공산당의 실정과 횡포를 비난하는 시민위원회 주관의 ‘인민위원회 지지대회’가 열린 뒤, 공산당이 경금속 공장직공을 동원해 이를 점거하고 간부들을 폭행한 데서 비롯됐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의주 반공학생사건은 1945년 11월 23일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중학교 학생들이 공산당 타도를 외치며 벌인 반소, 반공 시위입니다. 신의주학생의거, 힌의주학생반공의거라고도 불립니다.

    11월18일 용암포 제일교회에서 소련군과 조선 공산당의 실정과 횡포를 비난하는 시민위원회 주관의인민위원회 지지대회가 열린 뒤, 공산당이 경금속 공장직공을 동원하여 이를 점거하고 간부들을 폭행한것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이에 분격한 신의주 학생자치제 대표들과 학생들은 공산당의 만행을 규탄하는 운동을 전개한데 이어, 23일 오후 2시부터 신의주의 6개 중학교와 부근의 5000여명의 학생과 함께 궐기해 공산당 본부, 인민위원회 본부, 보안서 등을 점거하고 이에 공산당의 보안대와 소련군이 무력으로 대응하여 23명이 사망하고 1000여명이 검거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