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후백제의 견훤은 원래 상주고을
가은현 사람으로 본래의 성은
이씨였으나, 후백제 왕의 악몽을 갖고
천하를 병탄코자 공산동 수대전을
시정함에 고려 태조 왕건이 정기 5,000명으로 공산 아래서 맞아 대전을
벌였으나 전세가 불리하여 장사 김락(金樂)과 신숭겸(申崇謙)이 죽고 제군이
패배함으로 왕건은 난을 피하여 지금의 동내동까지 이르니 적국의 추격이
없으므로 한 줌의 땀을 식히고 숨을
돌리게 되니 이 곳을 안심(安心)이라고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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