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크림전쟁이 일어나게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1853년부터 1856년까지 3년에 걸쳐 러시아제국과 영국, 프랑스, 오스만제국이 벌인 크림전쟁이 일어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근본적인 배경은 러시아의 지중해 출구 확보 문제로, 러시아는 1771년 흑해를 지배하고 있던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래 크림반도를 거점 삼아 흑해에서 세력 확대에 나섰고 16세기 이래 흑해는 크림 칸국과 상전국인 오스만 제국의 바다였는데 크림 반도를 확보한 러시아가 이 지역에 요새와 항구를 건설, 해군을 양성하며 본격적으로 남하를 시작합니다.
동유럽과 캅카스를 놓고 수백년간 충돌한 앙숙인 러시아와 오스만 제국은 나폴레옹 전쟁 동안 잠시 對프랑스 동맹의 일원으로 손을 잡지만 나폴레옹 몰락 이후 다시 적대 관계가 되며, 러시아는 동방정교회의 보호자로서 오스만 제국 치하 정교도들에 대한 보호 등을 구실로 오스만과 사사건건 충돌하며 보스포루스 해협, 다르다넬스 양 해협의 동행권 확보에 나서게 됩니다.
그러나 부유한 나라였던 대영제국은 나폴레옹 몰락 이후 급 부상한 러시아의 해양 진출을 마냥 지켜보지 않았고 영국은 1838년 메흐메트 알리의 반란을 진압해주는 대가로 통상 협정을 맺어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을 확보, 적극적인 지원을 했고 군사, 경제, 정치, 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합니다. 결국 1841년 이집트 문제의 사후 처리를 위해 주요 당사국인 오스만제국과 러시아,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제국, 프로이센 왕국까지 끌어들인 영국이 런던 해협 조약을 체결하면서 오스만 제국의 보스포루스, 다르다넬스 해협 통제권을 국제적으로 공인시킵니다.
1851년 쿠데타를 통해 제정을 부활시킨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는 가톨릭 세력의 지지를 얻어 정치적 기반을 다지기 위해 오스만 제국에 성지관할권를 요구, 오스만 제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이전부터 동방정교회의 보호자로서의 성지 관할권을 주장하던 러시아와 충돌을 피할수 없게 됩니다.
영국의 압력으로 해협의 통제는 포기하지만 러시아는 포기하지 않았고, 오스만제국과 국경을 접한 캅카스 및 발칸반도 지역에서 계속적으로 국경 분쟁을 유도해 국지적 분쟁을 전면전으로 확대시킬 기회를 보고 있었고 결국 1853년 7월 러시아가 오스만에 예속된 도나우 강 연안의 공국들을 공격, 점령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일촉즉발의 위기가 터지게 됩니다.
오스만제국은 전 유럽을 공포에 떨게 했던 전성기의 국력을 오래 전에 잃어버리고 유럽의 환자로 전락했던 반면, 러시아는 나폴레옹을 꺾은 후 적어도 군사력에 있어 세계에서 손꼽히는 열강으로 성장해 누구도 오스만이 러시아의 위협에 정면으로 도전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으나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지켜볼 생각이 없던 영국은 전면적인 참전을 포함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을 약속하며 오스만 정부에 강경대응을 권유, 오스만 정부도 도나우강 유역의 속국들을 내주면 수도인 코스탄티니예가 코 앞인 터라 군사적으로 이를 격퇴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전쟁을 결심하게 됩니다.
여기에 팔레스타인 지역의 교회 및 성지 관할권을 놓고 러시아와 경쟁하던 프랑스 제국도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영국과 손잡게 됩니다.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크림전쟁의 근본적인 배경은 러시아의 지중해 출구 확보 문제였습니다.
러시아는 1771년 흑해를 지배하고 있던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래로 크림 반도를 거점 삼아 흑해에서 세력 확대에 나섰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