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고간섭기에 있었던 다루가치란 무엇인가요?
몽고간섭기에 다루가치라는게 있었다고 들었는데요, 그런데 몽고간섭기에 있었던 다루가치란 무엇인가요? 그리고 다루가치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다루가치는 고려 후기에 몽골제국에서 정복지의 총독, 감독관으로 두었다가 지방장관으로도 사용된 직명입나다.
고려에는 1232년(고종 19)에 처음 설치되었다고 합니다.
고려가 몽골에 항복하여 개경으로 환도한 후인 1270년부터 1278년까지 개경에 상주하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다루가치는 고려 후기 원나라가 고려의 내정을 간섭하기 위해 설치한 민정담당자 입니다.
원래 원나라는 중앙의 하급 관부와 지방의 노, 부, 주, 현 및 복속 국가에 대한 통치 방식으로 다루가치를 설치, 1231년 고려는 살리타이가 이끄는 몽골군에게 개경이 함락될 위험에 처하자 화친을 제의했는데 이때 몽골군은 철군하는 대신 서경을 비롯한 서북면 지역에 72명의 다루가치를 설치했고 다음해 도단을 개경에 파견해 내정을 간섭합니다.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원나라에서 총독(總督)·지사(知事) 등을 호칭한 직급명. <몽골비사(蒙古祕史)>에는 다루가친(荅嚕合臣, Darughaćhin)으로 되어 있다. 어원은 몽골어의 「진압하다」 또는 「속박하다」라는 뜻을 지닌 「daru」에 명사어미 「gha」와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chi」를 붙여 「진압에 종사하는 사람」 「속박하는 사람」의 뜻이 되고, 그것이 총독·지사의 뜻으로 바뀌어 원나라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다루가치는 관인을 맡아 사무를 처리하는 관청의 장(長)을 총칭하는 것으로서 중서성을 비롯한 고급 관청을 제외하고 그 예하의 중앙관청과 모든 지방행정관청에 두어졌다.
다루가치가 처음으로 고려에 배치된 것은 1231년(고종 18)의 제1차 몽골침입 때로서, 이때 살리타이는 철군의 조건으로 서경을 비롯한 서북면 지방의 14개 주요 성에 72명의 다루가치를 설치할 것을 주장했다.(<원사(元史)>에는 40여 성으로 기록 됨). 또한 1232년에 도단(都旦)을 다루가치의 최고책임자로 보내 고려의 내정에 간섭하고자 했는데, 이로써 다루가치가 수도인 개경에도 설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루가치는 원나라 간섭이 끝난 이후 소멸된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 한국고중세사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