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갸름한칠면조122
갸름한칠면조12223.06.28

조선시대에도 소방관 비슷한 직업이 있었다는게 사실인가요?

조선시대에 이미 나라에서 조직된 소방관같은 직업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들의 역활이나 활약상같은 에피소드, 또 조직체계와 위상은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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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5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도 현재의 소방관 같은 멸화군이라 칭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멸화군은 24시간 대기하면서 불이 나면 쇠갈고리와 밧줄 등을 들고 현장으로 출동해 불을 끄는 일을 맡았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 금화도관, 금화군 그리고 이것이 확대된 멸화군이 조선시대의 소방관역할을 맡은 직업입니다.

    아래의 내용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s://www.korea.kr/multi/visualNewsView.do?newsId=148847111


  • 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네. 조선시대에도 소방관 직업이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소방 관할 기관인 금화도감 그리고 소방관 금화군이 있습니다.

    금화도감은 조선 세종 (8년) 한성부 대화재를 계기로 설치된 우리나라 최초의 소방기관 입니다.

    금화군은 조선시대에 활동하던 우리나라 최초의 소방관으로 멸화군 또는 구화군 이라고 불렀으며 화재진압, 예방, 순찰, 관청, 경계근무 등을 수행 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게되면

    한성부 대화재를 계기로 '금화도감'이

    설치 되었습니다.

    여기에 소속된 ‘금화군(불을 막는 군대)’은 불이 났을 때 물을 긷고 나르는

    일을 했습니다.

    세조 대에 이르러 ‘멸화군(불을 전멸시키는 군인)’으로 명칭이 바뀌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의 최초의

    소방대원이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426년(세종 8) 금화도감(禁火都監)과 성문도감(城門都監)을 합하여 수성금화도감이라 하고 도성의 보수와 한성부 내의 소화, 천거(川渠)의 준설 및 교량의 보수 등을 담당하게 하였다. 1460년(세조 6) 관사(官司)의 기구 축소 때 이를 폐지하여, 수성(修城)은 공조(工曹), 금화(禁火)는 한성부로 이관하였다가 성종대에 들어서 화재가 빈발하자 1481년(성종 12) 이전의 수성금화도감을 수성금화사로 고쳐 설치하였다.


    관원은 의정(議政)이 겸하는 도제조(都提調) 1명, 병조판서와 공조판서 또는 한성판윤이 겸하는 제조(提調) 2명, 제검(提檢) 4명, 별좌(別坐) 6명, 별제(別提) 3명을 두었으며, 제검 4명 중 3명은 사복시(司僕寺)·군기시(軍器寺)·선공감(繕工監)의 정(正)이 각각 겸임하였다.


    또 별좌 6명 중 4명도 타 관직이 겸임하였으며, 별제 3명 중 1명도 한성판관이 겸임하여 결국 정4품 제검 1명, 정·종5품 별좌 2명, 정·종6품 별제 2명 등 5명의 관원만이 전임으로 있었다. 또한 50명 정원 외에 상설 소방대원인 멸화군(滅火軍)을 두어 24시간 대기시켰다가 화재가 발생하면 금화사 관원의 인솔하에 출동하여 소화 작업을 하였다.

    출처 :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