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세자와 인조가 틀어진 원인은 무엇인가요?
소현세자의 아이들까지 죽일정도로 인조와 소현세자의 관계는 상당히 틀어졌는데 인조가 소현세자를 싫어하고 독살했다는 의심까지 받게 된 원인은 어디에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소현세자와 같은 경우 청나라에 상당히 우호적이었고
청나라에 굴욕을 겪은 인조 입장에서는 이것이 달갑지 않았기에
그런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경제·금융전문가 조유성 AFPK 입니다.
✅️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 소현세자가 청나라의 선진 문물에 관심을 가졌다는 점(* 인조에게 청나라는 원수인데, 원수의 나라의 문물에 관심을 가지는 세자가 못마땅했을 가능성이 큼.) 둘째 청나라가 소현세자를 비호했다는 점 즉, 자신을 폐하고 소현세자를 왕으로 세울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근거해서 관계가 틀어졌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병자호란으로 미처 강화도로 피신하지 못한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40여일을 버티다가 강화도에서 왕족들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삼전도에 나와 청 황제 앞에서 삼배고구두의 치욕을 당합니다. 이름하여 삼전도 굴욕입니다. 소현세자와 세자빈 봉림대군부부 삼학사(윤집 홍익한 오달제) 등이 불모로 청으로 잡혀갔습니다. 인조는 소현세자가 반청세력의 핵심세력이 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소현세자는 청에 가서 생각보다 큰 청나라의 위세와 선교사를 통한 또다른 세계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강력한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하여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스스로 갖출 것을 갖춰가는 합리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는데 인조의 입장에서는 소현세자가 청 황실과 잘 지내면서 자신을 쫓아내고 왕위를 찬탈하려 한다는 망상을 갖게 되면서 불화가 시작되었습니다. 10여년 가까운 볼모생활을 끝내고 돌아온 소현세자는 시름시름 앓다 죽게 됩니다. 건강했던 세자의 죽음은 의문을 갖게 했으며 이것이 인조의 독살이라는 것으로 확산하게 된 것이고 세자빈 또한 모함하여 신하들의 반대에도 출궁시킨 뒤 사사합니다. 세 아들 또한 제주도로 유배를 보내버렸습니다. 다음 왕위는 둘째아들인 봉림대군(효종)에게 물려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