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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군의 군대해산에 저항하여 일본군과 벌인 남대문전투에서 우리군의 희생자는 얼미나 됐었나요?

1907년에 대한제국군이 해산명령을 받았을 때 이에 저항하여 일본군과 벌인 남대문전투에서 우리군의 희생자는 얼미나 됐었나요?

이 때 어느정도의 병력이 탈출하여 의병에 합류해서 활동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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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

    남대문 전투는 대한제국과 일본의 정규군 사이에서 벌어진 전투였지만, 두 군대가 보유하고 있는 전력의 차이가 컸기 때문에 오래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이 전투에서 일본군은 4명이 전사하고 30~40명이 부상을 입었지만, 대한제국 군인들은 68명이 전사하고 100여 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러한 사상자의 차이는 기관통과 수류탄 등으로 무장한 일본군의 화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병영에서 탈출해 도주하는 과정에서 많은 대한제국 군인들이 사살되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남대문 전투의 소식이 지방으로 전해지자 곳곳에서 군인들의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8월 5일 김덕제ㆍ민긍호등이 이끌던 원주의 진위대가 봉기를 일으켰으며, 8월 9일에는 지홍윤ㆍ이동휘 등이 이끌던 수원 진위대 강화 분견소의 군인들이 봉기하였습니다.

    이처럼 지방 진위대의 해산과정에서도 군인들의 집단 항쟁이 계속되었으며, 해산 군인들이 의병에 합류하면서 항일의병의 전투력이 강화되었고, 이는 의병투쟁이 의병전쟁으로 발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