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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검은꼬리63
흰검은꼬리6323.03.15

조선시대 유교 사상이 들어오기 전에 장례문화는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조선시대 유교 사상이 들어오기 전에 장례문화는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그 전에도 3년상을 치루었는지 궁금합니다.

신라. 고구려 등 고조선에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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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6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3.15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매장 문화는 삼국시대 부터 상류층부터 시작 되었으며, 통일신라에서 부터 고려 초기에는 불교의 영향으로 화장 문화가 성행 했다고합니다.

    매장 풍습은 잠시 쇠퇴했다가 고려 후기 성리학이 도입되면서 유교 문화가 중요시되고부터는 다시 매장문화로 활성화 되었다고합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고려시대에는 유교식 장법인 토장과

    상반되는 불교식 화장법과 망자를

    극락으로 인도하는 추천재(追薦齋)

    같은 설재(設齋)가 주류를 이루었다.

    화장법은 불교식 장법으로 불교가

    전래될 때 함께 들어온 이질적인

    요소였으나 불교가 융성하면서

    신라 말부터 고려시대 내내 성행하였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구려는 고인돌이 사라지고 돌넛널무덤이 발달하며 고구려 지역에서는 큰 돌무지무덤이 나타나고, 낙동강 유역에서 판석이나 괴석을 이용한 돌널무덤이 많이 보입니다.

    고대의 우리 조상들에게 장례식은 이승의 삶을 마감하고 고인의 영혼이 무사히 저승 세계에 도착하고 언젠가 다시 새 생명으로 부활하기를 원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영혼의 불명을 믿고 장례를 후하게 치르는 것이 이 시대의 하나된 공통 풍습이었습니다.

    그들은 죽음이 다른 시계로 이어진다고 생각하고 새나 말이 죽은자의 영혼을 하늘 나라로 데려다준다고 생각하여 새의 깃털이나 말을 그린 항아리, 말 모양의 토기를 무덤에 같이 넣어주기도 했습니다.

    부여는 보통 장례 기간이 5개월에 이르렀기 때문에 귀족들은 여름에 얼음을 써서 시신의 부패를 막았고 장례를 치를 때 여자들은 흰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는데 이를 미루어 상복을 입는 풍습이 있었듯 합니다.

    상을 치르는 기간을 되도록 오래 끄는 것을 영광으로 여겨 남의 강권에 못 이겨 장례를 행하는 것을 예절로 알아 상주는 시간을 더 끌려고 하고 다른 사람들은 이를 말리려 하여 서로 옥신각신하기도 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이전의 장례문화는 기록이 적어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고조선 시대에는 산촬(山葬)이 일반적인 장례 방식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죽은 사람의 시신을 산에 묻는 것으로, 산과 자연과의 결합을 통해 영혼이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라 시대에는 불교와 함께 인류복지의 이념이 보급되면서 발생한 불계의 영향으로 화장을 행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이후 고구려 시대에는 양식(養葬)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는데, 이는 시체를 묻고 묘비를 지어서 조상을 기리는 것입니다. 이후 고구려 시대의 장례문화는 발전하면서 백제 시대에는 고구려와 같은 양식이 이어지고, 산촬의 경우에도 도시화가 진행됨에 따라 산에서 묻는 대신 묘지에서 묻는 경우가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3년상의 경우에는, 이는 고대 중국의 관습으로, 가족이나 친지 중 가장 가까운 사람이 죽으면 그를 기리기 위해 3년간 모든 일을 멈추고 그를 추모하는 것입니다. 고조선 시대나 신라 시대에는 이러한 관습이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우리 조상님들의 장례문화는 어떠했을지 삼국시대를 살펴 보겠습니다.

    -고구려

    고구려 시대에는 삶과 죽음이 같은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했고 죽고 나서도 육신이 존재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준비할것이 많았다고 생각했던 건지 결혼한 직후부터 죽음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마치 이집트왕이 왕위에 오르지마자 피라미드 무덤을 준비한것과 조금 비슷한 느낌이네요^^

    또한 장례식이 슬픈 분위기가 아닌 축제느낌이 더 강했다고 해요. 음악과 악기가 흐르고 춤을 추며 장례를 치뤘습니다.

    -신라

    신라시대는 순장이라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왕 귀족같은 고위층이 장례를 치를때 노비나 가축을 함께 매장하는 악습이었지요. 그리고 상복입는 기간이 길었던 고구려 백제와 달리 1년간 상복을 입도록 하고 지증왕때 순장이 금지되었습니다. 이후 통일 신라때부터는 불교가 퍼지면서 화장을 주로 하게 되었습니다.

    -백제

    백제는 불교의 영향으로 장례때 화장을 한 후 뼈를 추려 매장하는 문화였고 남편 부모가 상을 당하면 3년의 기간동안 상복을 입었습니다.

    이후 조선시대에는 불교식 제를 금하고 유교의 영향을 받은 장례가 치뤄지게 되었지요.

    제 개인적으로는 고구려의 방식이 좋다고 여겨지네요^^


  •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조선은 탁자식 고인돌이 유물로 남아있는데 이것은 지배층인 군장의 무덤입니다. 신라는 봉분을 흙으로 하고 돌을 쌓아 무덤을 만들어 도굴이 어려워 천마총 등 유물이 많이 나왔는데 왕릉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유교식의 장례문화는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고려는 승려들의 부도가 많이 남아 있는데 이는 불교식 화장문화가 유행했음을 알려줍니다. 고려정치는 유교식으로 하였지만 생활문화는 불교영향이 컸던 이원적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에반해 조선은 정치와 종교 생활문화가 모두 유교식이었습니다. 충과 효를 강조하고 3년상은 자식된 도리라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관직도 내던지고 3년상을 치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