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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박한흑로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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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언제부터 만들어서 먹었을까요?

역사를 배울때도 술을 나누어 마시는 장면이 삽입되어있거나 여러 책에서도 예전부터 술을 먹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삼국지에서도 나오고요.

인류는 술을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먹게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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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앱테커
    앱테커

    술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다. 기원전 5,000년 전부터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에서 포도주를 빚었다고 한다. 당분이 많은 과일이면 무엇이든 과실주를 담글 수 있는데 특히 포도는 당이 많아서 과실주를 담그기에 가장 알맞다. 농경 시대에 들어와서 곡류를 생산하면서 곡식으로 빚은 양조주가 생겼다. 곡물주를 빚으려면 전분의 당화 과정을 거친 다음에 알코올 발효를 해야 한다.

    고대 중국의 『서경』에는 누룩으로 빚은 술을 ‘국얼(麴蘖)’이라 한다고 적혀 있고 한(漢)나라에서는 밀로 누룩을 만들었다. 누룩이란 밀을 굵게 갈아 반죽해서 띄운 술의 원료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술이 처음 나오는 문헌은 『제왕운기(帝王韻紀)』로 고구려의 주몽 신화를 보면 천체의 아들 해모수가 하백의 세 딸을 초대하여 취하도록 술을 마시게 하니, 모두 놀라 달아났으나 큰 딸 유화가 해모수에게 잡혀 인연을 맺어 주몽을 낳았다고 한다.

    『위지(魏志)』「동이전」에는 백성들이 추수를 끝내고 모여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즐기던 영고(迎鼓), 동맹(東盟), 무천(舞天) 등의 행사 때에는 밤낮으로 식음(食飮)하였다고 씌어 있는데 여기서 ‘음(飮)’은 술을 마시는 것을 말한다. 『위서(魏書)』에서는 곡물을 씹어서 술을 빚는데, 이를 마시면 취한다고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 시대에 입 안에서 곡물을 씹어서 만든 술을 일러서 ‘미인주(美人酒)’라고 했다는 기록이 『지봉유설(之峰類說)』에 남아 있다. 삼국 시대에는 술 빚는 기술이 아주 발달해 중국 책에 우리나라 술에 대한 기록이 많이 전해지며, 백제의 수수보리(須須保利)는 일본에 누룩으로 술 빚는 방법을 처음 전해 주었다고 한다.

    고려 시대에는 약주, 탁주, 소주의 기본적인 술 세 가지를 모두 만들었다. 서긍의 『고려도경』에서는 “술이 독하여 쉽게 취하고 빨리 깬다. 서민들은 좋은 술을 얻기 어려워 맛이 흘고 빛깔이 짙은 것을 마신다”고 하였다. 여기서 술은 누룩과 멥쌀로 빚은 청주이고, 서민이 마신 것은 탁주인 듯하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때 원나라에서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고, 몽골군이 주둔했던 개성과 안동·제주도가 소주의 명산지로 유명하다. 그 밖에 고려 시대의 시문에 이화주, 화주, 파파주, 백주, 방문주, 춘주, 천일주, 천금주, 녹파주 등의 술이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맑은 술인 청주를 ‘약주(藥酒)’라고 하는데 약재를 넣은 약양주(藥釀酒)와는 다르다. 약주라는 명칭의 유래는 『임원십육지』「정조지」에 나와 있다. “서충숙공(인조 때의 정치가 서성)이 좋은 청주를 빚었는데 그의 집이 약현에 있었기 때문에 그 집 술을 약산춘(藥山春)이라 한다”고 하였다. 또 조선 중종 때 서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부모가 장님 처녀와 결혼을 시켰다. 그는 첫날밤에 아내가 장님인 것을 알았지만 상관하지 않고 더욱 사랑하였고 아들 하나를 두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서해가 요절하자 그의 아내는 슬픔에 잠겼으나 남편의 깊은 정과 은혜를 생각하여 기울어진 서씨 집안을 위해 친정에서 돈을 꾸어다가 청주를 빚어 팔았다. 술맛이 좋아서 금방 장안에 퍼졌는데 이 여인이 서울 약현(藥峴) 사람이어서 사람들이 이 술을 ‘약주’라고 불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