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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달한거북이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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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원불교는 어떤 독립운동을 했나요?

일제강점기 때에 국민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것이

바로 독립운동입니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 거죠~!

이러한 독립운동이 종교단체에서도 활발히 이루어졌다고 알고 있는데,

원불교는 어떤 운동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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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원불교는 서세동점과 일 본 제국주의의 침탈이 가속되는 조선말과 일제하라는 시 대상황 속에서 종교를 통한 새로운 구국운동, 즉 종교적 민족운동의 형태로 성립된 민중종교라 정의할 수 있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독립운동은 저축조합운동, 간척지개척운동, 기도결사운동이 있습니다.

      소태산은 1916년 대각을 계기로 영광 일대의 민중들을 결속시키는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구체적인 운동은 저축조합운동이라는 경제적 차원의 민족 운동으로 나타났습니다.

      약 1년간 저축조합 운동을 통해 상당한 자금을 축적한 소태산과 그 제자들은 1년 뒤인 1918년부터는 영광 백수읍 길룡리 앞바다를 막아 농토로 바꾸고자하는 간척지 개척운동에 착수하였습니다.

      소태산은 간척지 개척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3.1독립운동이 한창이던 1919년 3월에 제자들에게 '창생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명을 내려 기도결사운동이라는 정신운동을 전개하도록 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원불교의 창시자 박중빈은 일찍부터 우주와 자연 현상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수도를 시작했다.


      또한 그는 농민들의 어려운 생활을 보면서 이들을 구제할 방안을 고민했고, 의병의 저항과 한일 강제 병합 과정을 지켜보면서 민족의식이 높아졌다.


      20여 년의 수도 끝에 깨달음을 얻은 박중빈은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실천하기 위해 사람들을 모아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런 다음에 사람들과 함께 제방을 쌓고 농토를 만들며 자력 갱생 사업을 벌였다.


      박중빈이 만든 공동체는 노동 공동체이자 신앙 공동체였다. 박중빈이 살아 있을 때는 ‘불법 연구회’라고 불렀고, 그가 1943년에 세상을 떠난 뒤 제2대 교주 때부터 원불교라고 불렀다.


      박중빈이 깨달은 진리는 불교의 경전인 <금강경>과 비슷하고, 석가모니를 선각자로 존중한다.


      하지만 원불교는 불교의 한 종파가 아니라 새로운 종교라고 할 수 있다. 박중빈이 깨달음을 얻는 과정에서 불교와의 연관성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원불교는 동학처럼 낡은 세상이 가고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후천 개벽 사상을 가지고 있어서 띠었다.종교의 성격도 띠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원불교의 전신인 ‘불법연구회’는

      민족운동 더 나아가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민족지향적 종교로 일제

      강점기를 지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