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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초의 통화기록은 무엇인가요?

조선에 통신시설이 마련되고 전화교환원이 전화를 연결해주었는데 당시 첫번째로 통화했던 사람은 누구이고 통화는 어떤 내용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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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굉장한비오리121
    굉장한비오리121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전화통화는 1896년 궁내부에 자석식교환기가 설치되면서 이루어졌습니다.

    한국에서 전화가 사용된 것은 1898년 당시 내부(宮內部) 주관으로 궁중에서 각 아문(衙門)과 연락을 위해 덕수궁에 전화시설을 마련하여 각 아문은 물론 인천에 있는 감리소(監理所)에까지 전화를 개통하면서부터입니다. 궁중전용으로 전화기 9대가 도입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896년 10월, 덕수궁 내부에 전화기가 설치됐다. 당시 왕이었던 고종은 궁에서 직접 인천으로 통화를 했다. 한국 최초로 이뤄진 이 전화 통화로 인천 감옥에 수감 중이던 김창수라는 인물이 사형을 면할 수 있었다. 당시 김창수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조선인으로 변장한 일본인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 집행 직전의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이에 고종은 여러 날이 걸리는 어명 전달 방식이 아닌 직접 ‘전화’를 걸어 사형 집행 정지 명령을 내리는 파격적인 방법을 택했다.

  • 안녕하세요. 안경국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최초의 통화 기록은 "천문식" 또는 "천문통보"라고 불리는 천문학적인 기록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천문학적인 관측과 연구가 매우 중요한 사회적 역할을 하였으며, 통치자들은 천문학적인 지식을 활용하여 국가 운세, 농사 일정, 축사 일정, 외교, 군사 작전 등 다양한 사회적 사건과 결정을 내릴 때 이를 기반으로 하였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궁중과 전국 각지에 설치된 천문대에서 천체의 운행을 관측하고, 그 결과를 정밀하게 기록한 것이 "천문식"입니다. 이러한 천문식은 조선 왕조의 연호와 왕위 계승, 국가 사건 등에 활용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한 왕조가 다른 왕조로 교체될 때 그 연호가 바뀌는데, 이를 위해서는 천문적인 계산과 예측이 필요했습니다.


    조선 초기에는 이러한 천문식은 중국의 천문학적 기록을 참고하였으나, 조선 천문학자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조선 특유의 천문식을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조선 천문식은 조선 왕조의 통치 철학과 국가적 필요에 따라 점차 발전되었고, 조선시대 중기 이후에는 독자적인 천문학적 연구와 발전을 이루어냈습니다.


    따라서 조선 최초의 통화 기록은 천문학적인 천문식 또는 천문통보로 볼 수 있으며, 이것이 조선시대의 정치, 문화, 사회 생활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국에 처음 전화기가 소개된 것은 1882년이지만 본격적으로 설치 , 운영된 것은 1898년이며 덕률풍이라 불렀습니다.

    1896년 궁 내부에 자석식 교환기가 설치되며 최초의 전화통화가 이루어지며, 백범 김구가 사형을 당하기 직전 고종이 직접 전화로 김구의 사형을 연기하도록 명해 사형을 면했다는 이야기는 논란이 있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최초의 통화기록은 1898년 1월 24일 광무 2년으로 그 내용은 외국 함대가 나타났다 입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사람이 처음 전화를 사용한 기록은 1882년 중국 톈진에 간 영선사 김윤식인데 2월 25일자 일기에 기록이 있습니다. '어화통(語話筒) 양쪽을 보니 구리선에 연결되어 있었고 귀에 대고 겨우 말을 알아들었다고 합니다. ' 조선 땅에서 전화를 사용한 첫 기록은 1898년 1월 24일 인천 개항장 관리가 한성에 전화로 보고한 내용이라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조선에 통신시설이 마련되고 전화교환원이 전화를 연결해주기 시작한 것은 1900년 9월 7일입니다. 당시 첫 번째로 통화했던 사람은 대한제국 황제 고종과 그의 황후 명성황후였습니다.

    고종은 경복궁 자정전에서, 명성황후는 창덕궁 대조전에서 통화를 했습니다. 통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고종: "여보세요, 명성황후시죠?"

    명성황후: "네, 고종입니다."

    고종: "잘 지내시죠?"

    명성황후: "예,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전하께서는요?"

    고종: "나도 잘 지내고 있다."

    명성황후: "전화가 정말 신기하네요."

    고종: "네, 나도 신기하다."

    명성황후: "앞으로 자주 통화합시다."

    고종: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 통화는 조선의 근대화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사건입니다. 전화가 도입되면서 조선은 세계와 연결되기 시작했으며, 통신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고종과 명성황후의 통화는 조선의 지도자들이 근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기도 합니다.

    이후 조선은 전화망을 빠르게 확충하여, 1910년에는 전국에 2만 7천여 개의 전화가 설치되었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추천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