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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물총새113
조용한물총새11323.05.26

조선시대에는 불을 어떻게 켰나요?

저는 현대시대에도 라이터 없으면 담배도 못피우고 불도 절대 못만드는데 조선시대도 요리하고 그럴려면 불 지펴야했을텐데 어케 불을 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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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26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선조들은 부싯돌이나 그 위 단단한 차돌로 철편의 날을 내리쳐 철의 분말이 타격열에 의해 공기 중에서 발화하면서 불똥을 일으켜서 불씨를 만들어 사용했다.

    그렇지만 매번 부싯돌에 부시를 쳐서 불을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아예 불씨를 각 가정에서는 꺼트리지 않고 밤새워 보관했다. 그것이 불씨통이었다.

    불씨통에서는 불이 붙어 있는 숯을 넣은 후 그 위에다가 다시 오래 잘 타는 숯으로 덮어서 숯불이 꺼지지 않도록 했다.

    숯 사이 사이로 공기가 통해 불씨는 완전히 꺼지지 않고 계속 유지될 수 있던 거다. 그리고 불이 필요할 때 불이 잘 붙는 재료로 불을 붙인 후 아궁이로 옮겨서 사용했다.

    이 관리는 여자들의 몫이었는데 특히 며느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중에 하나였다. 밤사이 꺼지지 않고 소중히 간직해 놓은 불씨를 살려 가족에게 온기가 가득한 먹을 밥을 지어야 하고 겨울에는 난방이나 따뜻한 물을 데우는 데 써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 관리를 못 해 불이 꺼졌을 땐 시어머니에게 혼이 난 후 이웃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며 소중한 불씨를 빌려와야만 했다.

    출처: 119 news [119기고] 소중한 불을 지키자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불씨통에다가 작은불씨가 안 꺼지게 불씨를 보관했습니다.

    불이 꺼진경우에는 부싯돌을 사용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인광노라고 하는 것이 조선시대 성냥 인데요. 세세한 차이는 있지만, 쉽게 말해서 전통 성냥이라고 보면 되는데 다만, 요즘 성냥하고는 좀 개념이 다릅니다. 현대적인 성냥은 마찰만으로 스스로 불을 일으킬 수 있지만, 인광노는 화로에 남은 잿불 같은 작고 약한 불씨에 대어 열을 가해야 한다고 합니다. 즉, 기존의 불씨를 더 큰 불로 만드는 도구라고 할 수 있는데 그래서 예전에는 집안에 조그만 불씨를 화로에 항상 남겨 놓았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부싯돌을 이용해서 불을 지피고 나무를 이용하여 불을 확산시킬 수 있었습니다, 부싯돌은 아주 귀중한 자산이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역사시대에 들어오기 이전부터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지역과 비슷하게 충격법이나 마찰법으로 불을 만들어 사용할 줄 알았습니다. 충격법으로 불을 만들려면 부싯돌(차돌)을 황철광으로 세게 쳐서 불꽃을 만들고, 거기에 마른 쑥 같은 인화하기 쉬운 것을 달아 불이 붙게 했습니다.

    마찰법은 구멍 뚫린 나무판을 고정시키고 그와 직각으로 나무막대를 구멍 속에 넣어 세게 마찰하여 나무막대에 불을 붙이는 방식입니다.

    이런 원시시대의 방법 외에도 오목거울이나 볼록렌즈를 써서 햇빛을 모아 불을 일으키는 방식도 일찍부터 알려져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오목거울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이미 2세기부터의 일로 알려져 있고, 화경(火鏡)으로서의 오목거울은 양수(陽燧) 또는 금수(金燧)라고 알려졌습니다.

    오목거울은 고려 때 많이 만들어졌고, 17세기 초에 간행된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오목거울로 햇빛을 모으고 거기에 마른 쑥을 대놓으면 불을 붙일 수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또 햇빛을 모아 똑같은 원리로 불을 만들 수 있는 볼록렌즈는 이미 통일 이전의 신라 때부터 혹은 그 전부터 화주(火珠)라는 이름으로 사용되었음이 확실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일반 서민들이 불을 필요에 따라 새로 만들기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대개 가정에서는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지켜가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화로에 보관한 불씨를 죽이지 않고 지키는 일이야말로 그 집안 며느리 또는 주부의 가장 중요한 의무였습니다. 민담에 전해오는 불씨를 지키기 위하여 온갖 고초를 겪는 며느리의 이야기가 그런 사정을 잘 보여 줍니다.

    일반 가정에서는 불씨를 대대로 지켜가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정부에서는 때로 새 불을 만들어 쓰는 격식도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예를 들면 조선시대 병조에서는 해마다 다섯 차례 불을 다시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기도 합니다.

    이 5회의 개화(改火)는 각각 입춘 · 입하 · 토왕절 · 입추 · 입동에 행하며, 그 때마다 바닥으로 쓰는 널빤지 나무와 그 구멍에 넣고 마찰하는 막대가 각기 다른 종류를 쓰게 정해져 있었습니다.(『만기요람』 군정편 2) 그러나 더욱 중요한 불을 새로 만드는 의식으로는 청명 때에 내병조(內兵曹)에서 실시하는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청명(淸明) 때 정부에서는 느릅나무와 버드나무로 불을 일으켜 각 관청에 나누어 준다고 적혀 있고, 『열양세시기』에는 같은 일을 한식 때 행했던 것으로 적고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돌을 수작업으로 깎아 만든 붓돌이 있습니다.

    부싯돌로 불을 켜 불을 붙여서 부싯돌에 옮겨 붙은 불을 아궁이나 다른 곳에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