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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발한메추라기알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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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르트는 왜 남연군의 묘를 도굴했나요?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 때 독일인 오페르트가 흥선대원군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도굴을 했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오페르트는 도굴한 이유는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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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금킹 시계퀸
    순금킹 시계퀸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독일상인이 조선에 통상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여 도굴운 하였다 하나 오페르트는 도굴범 이라 합니다.

    이는 영국과 프랑스가 배후에 있다고 합니다.

    유태계 독일인이 그가 남연군을 도굴하여 시체와 돈과 거래 하려 했던 것인지 아직도 그사건은 발혀진것없이 잡범수준으로 끝났다는 안타까운 역사적 사건입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오페르트가 대원군의 묘를 도굴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오페르트는 1·2차 항해를 통해 조선의 일반인들은 개국을 바라고 있으며,

    대원군의 통치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즉 대원군이 모든 문제의 원흉이라고 파악하게 된 것이다.

    이는 그가 제3차 항해에서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고 시도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

    출처: 우리역사넷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1866년 고종 3년, 쇄국중이었던 조선과 통상을 요구하였으나 2차례나

    거절당한다. 오페르트는 천주교 탄압에 보복한다는 명분하에 1868년 고종

    5년에 차이나號(호)를 빌려서 충청도

    아산만에 내항해 덕산군에 상륙해

    흥선대원군의 부친인 남연군 묘를

    도굴하려다 실패했다

    -출처: 위키백과

  • 안녕하세요. 김태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오페르트(Albert von Oppenheim)는 독일의 상인이자 고고학자였습니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오페르트는 독일의 군사 작전과 연관되어 중동 지역에서의 첩보활동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15년에는 현재의 이라크 지역에서 발견된 고대 도시 바빌론(Babylon)에 위치한 왕족 묘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곳에는 바빌론 제2왕조의 제왕들과 그 가족들이 묻혀 있었으며, 이들의 무덤 안에는 막대한 양의 금, 은, 보석 등이 함께 묻혀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페르트는 이 보물들을 군사 작전 자금 조달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고자 했고, 그래서 남연군의 묘지를 도굴하였습니다. 그 결과, 막대한 양의 보물이 탈취되었으나, 이 사실은 나중에 오페르트의 첩보활동이 드러나면서 대중들의 비난과 심한 국제적 문제를 초래하게 됩니다.

  •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오페르트(Heinrich Schliemann)는 19세기 말에 트로이아 유적을 발굴하면서 유명해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전에 그는 그리스의 미켈로스(Mycenae) 유적지를 발굴할 때도 큰 성과를 보였습니다.

    미켈로스 유적을 발굴하면서, 그는 단 하나의 특정 묘에 특별한 흥미를 보였습니다. 그 묘는 남연군의 묘라고 불리는 곳으로, 전설에 따르면 그리스 영웅 아기아멘논의 형제로서 트로이아 전쟁에서 죽은 전사들의 묘지였습니다.

    오페르트는 남연군의 묘에서 발굴한 보물과 유물들을 얻기 위해 이를 도굴했습니다. 이는 현재로서는 반문화적인 행위로 인식됩니다. 그러나 19세기에는 고대 유물 발굴에 대한 개념이 현재와는 다른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독일인 오페르트는 1866년 3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친 조선과의 통상교섭에 실패하자 기회를 노리다가, 병인사옥 때 탈출하여 프랑스 제독 로스의 강화도 침범 당시 향토 및 수로 안내인 역할을 했던 신부 페롱과 조선인 천주교도와 함께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 구의 묘를 발굴해 시체와 부장품을 이용하여 대원군과 통상문제를 흥정하고자 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경제&금융 분야, 재무설계 분야, 인문&예술(한국사) 분야 전문가, 지식iN '절대신 등급' 테스티아입니다.

    * 유교적 정서를 이용해서 당시 최고 집권자였던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시신을 도굴하여 이를 '통상 조건'으로 요구하기 위해 도굴하려 한 것인데, 결국 이는 오히려 서양 및 열강에 대한 반감만 높이는 결과를 샀다고 볼 수 있습니다.

    - - - 추가적으로 궁금하신 점은 의견으로 남겨주시면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성의껏 답변을 드려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 -

  •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독일 상인 오페르트는 흥선대원군이 집권하던 시기에 통상과 교역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대원군이 그 요구를 거절하여 불만을 품었습니다. 그러다 대원군 아버지묘인 남연군묘를 파서 유물을 훔쳐가려고 하였습니다. 집권자의 아버지이자 고종의 할아버지묘 즉 왕실의 묘이니 부장품이 많을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조선은 유교사회이고 검박한 것을 미덕으로 숭상했고 이를 실천했기에 남연군묘에 별다른 부장품이 없었지요. 성과없이 돌아가게 되었지만 이를 계기로 조선은 더욱 통상거부를 확고히 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