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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한백로27
청렴한백로2723.01.13

아웅산묘소 폭발사건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얼마전 영화 헌트가 장안의 화제였는데요. 근데 그 모티브가 아웅산묘소 폭발사건이라고 하는데

아웅산묘소 폭발사건때 무슨일이 있었는지 범인은 누구였는지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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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웅산묘소폭발암살사건은 1983년 10월9일 미얀마의 수도 양곤에 있는 아웅산묘소에서 한국인 외교사절 다수가 북한테러분자의 폭파암살로 사상한 사건입니다.

    당시 대통령인 전두환의 미얀마 순방 이틀째인 10월9일 공식 일정은 오전 10시 30분에 미얀마의 독립영웅 아웅 산 장군의 묘소를 참배하는 것이었습니다.

    미얀마를 방문하는 해외 주요 인사들은 다 하는 의례행사로 행사를 위해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장관 등의 정부 수행원들과 기자들은 먼저 인야레이크 호텔에서 아웅 산 묘소로 별도 승용차편으로 이동하여 10시18분쯤 아웅 산 묘소에 가장 먼저 도착합니다.

    이계철 주 미얀마 대사, 함병춘 대통령비서실장, 심상우 민주정의당 총재 비서실장, 민병석 대통령 주치의 등 나머지 수행원들은 영빈관에서 의전 행렬의 선발대로 10시10분경 아웅 산 묘소로 출발하여 서석준 부총리 등 일행들과 최종 합류하도록 되어있었습니다.

    현지 도로 사정을 잘 아는 이 대사가 탑승한 차량이 앞장서서 안내했습니다.

    10시 26분 경 태극기를 단 감색 계통의 벤츠 280SE차량을 선두로 한 제대 차량이 앞뒤로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묘소에 도착 후 공식 수행원, 기자, 경호원들의 시선이 자연히 이 차에 모였으며 창문이 선팅되어있어 내부는 보이지 않았고, 이 차에서 내려 도열에 합류한 이들은 이계철 주 미얀마 대사 일행입니다.

    수행원들끼리 악수하고 곧 각하가 오실테니 모두 자리에 정렬하자는 이대사의 말에 수행원 모두 2열 횡대로 도열하고 기자들도 촬영준비를 합니다.

    원래 일정에 따르면 10월9일 오전 10시15분 미얀마 외무장관이 전두환 대통령 숙소인 영빈관에 도착하여 대통령을 접견 후 10시20분 묘소로 함께 출발 예정이었으나, 영빈관으로 향하던 외무장관의 승용차가 운행 중 고장이납니다.

    당시 미얀마는 대한민국의 1960년대 수준의 교통 인프라를 가지고 있어 택시가 드물었으며 운전기사는 대체차량으로 택시 1대를 끌고 와 다시 출발하는데 이때는 이미 도착 예정시간이었던 10시 15분으로 이미 늦은 상황입니다.

    같은 시각 10시 15분, 영빈관에 있던 전두환은 도착해 있을 외무장관과 함께 차량을 타고 묘소로 출발하여 1층 로비에 내려가있었으나 외무장관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고, 국빈인 국가 원수가 로비에서 외무장관을 기다리는 격이 되어 모양새가 이상하여 다시 2층으로 갑니다.

    4분 뒤 10시 19분 미얀마 외무장관이 도착하였다는 보고를 받지만 전두환 대통령은 격려 인사를 중간에 멈추는 것이 이상하여 끝까지 하고 미얀마 외무장관과 함께 묘소로 출발하였는데 예정 시작보다 4분 늦은 10시 24분입니다.

    오전 일정이 대한민국 수행원들끼리 진행하는 묘소 참배이다 보니 조금 늦어도 외교적 결례가 될 일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영빈관에서 선발대로 출발한 이계철 주 미얀마 한국 대사를 비롯한 일부 수행원들은 10시 26분 묘소에 도착하고 당시 이계철 대사의 머리가 대통령과 매우 흡사한 대머리에 안경을 썼으며 태극기를 펄럭이는 의전 차량에서 내려 나머지 선발대 일행들과 함께 묘소로 진입하면서 먼저 도착한 수행원들과 악수를 나눈 뒤 앞 열 가운데 자리에 도열했으니 대통령으로 오인할수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주장과 달리 상황이 달랐다는 주장도 있는데 통상적으로 대통령 비서실장은 전두환과 함께 합니다.

    그러나 그날은 참배할 묘지의 행사장이 좁다는 이유로 장세동 경호실장의 요청에 함병춘 비서실장이 먼저 도착합니다.

    그런데 함병춘 실장도 대머리였으니 이과정에서 북한이 이계철, 함병춘을 전두환으로 잘못봤던가 관례처럼 비서실장이 도착하니 전두환도 당연히 도착했다고 생각하여 폭탄테러를 시행하였다고 합니다.

    아웅산 묘소의 나팔수들은 전두환의 도착이 지연되자 행사 진행 전 시범 연주 삼아 연주를 시작하고 아웅산 묘소 참배 현장을 직접 볼 수 없던 북한 공작원들은 애초에 폭탄의 폭파 시점을 전두환의 묘소참배를 알리는 진혼 나팔 소리에 맞추기로 했기 때문에 결국 진혼곡 연주가 나오자마자 곧바로 테러를 진행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웅산 테러 사건은 북한이 1983년 10월 9일 당시 버마(현 미얀마)를 방문 중이던 전두환 대통령 및 수행원들을 대상으로 자행한 테러 사건을 말합니다. 당시 아웅산 묘소에서 일어난 강력한 폭발 사건으로 대통령의 공식·비공식 수행원 17명이 사망하고 14명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이후 수사 결과 해당 사건이 북한의 소행임이 밝혀졌습니다.


  • 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웅산 폭팔사건을 버마 폭팔사건 이라고 합니다. 지금의 미얀마 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한국 대통령을 암살하려는 북한공작원에 의해 저질러진 폭파 사건 입니다.


  •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2009년 북한이 노동당 소속이었던 작전부와 35호실을 인민무력부 소속의 정찰국과 통합해 '정찰총국'을 신설하고


    역시 노동당 소속이던 대외연락부를 대외교류국으로 격하해 내각에 배속시키는 등 각종 공작기관들을 구조조정



    1987년 대한항공(KAL)기 폭파사건을 일으킨 김현희가 작전부 소속



    35호실 = 북한의 해외정보기관인 '대외정보조사부'의 별칭. 주로 대외 및 대남 정보수집을 담당하고 있으나 과거 대남.해외 테러공작 주도



    정찰국 =


    인민무력부 총참모부 소속으로 간첩양성 및 남파 등을 임무로 하고 있으며 요인 납치 및 암살, 전략적 모략공작, 핵심전략시설 정찰 등도 하고 있음.


    1983년 아웅산 폭파사건과 1996년 동해안 무장간첩 침투 사건을 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