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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밝은 별빛  나그네65
사막의 밝은 별빛 나그네6523.11.04

조선시대 천주교 "병인박해"사건은 왜 일어난건가요?

조선시대 천주교를 박해하고 천주교로 엮어서 세력을 견제하곤했는데요

조선시대 천주교와 관련된 사건중 "병인박해"는 어떤 사건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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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1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병인박해는 러시아가 제 2차 중영전쟁을 끝맺은 베이징조약을 알선하면서 시작됩니다.

    베이징조약의 체결로 러시아는 청으로부터 연해주를 할양받았고 조선과 접경하게 됩니다.

    1864년 러시아는 조선의 함경도 경흥부에 이르러 통상을 요구, 조선은 러시아인과 접촉한 조선인을 처벌하면서 통상 요구를 거절하나 1865년 러시아의 통상요구가 있자 조선은 러시아의 침략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이고 이때 조선이 와 있던 남종삼을 비롯한 천주교인은 흥선대원군에게 프랑스, 영국과 연결하면 나폴레옹 3세의 위력으로 러시아의 남하를 막을수 있다고 제안, 흥선대원군은 이를 수학해 천주교 조선교구를 통해 프랑스와 접촉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천주교 조선교구장이었던 시메옹 베르뇌는 정치와 종교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 마침 러시아의 통상 요구도 없게 되며 조선과 프랑스의 접촉은 무산됩니다.

    그러던 중 흥선대원군이 천주교를 통해 프랑스와 접촉을 시도했다는 소문이 퍼지며 천주교는 서학, 사학이라 배척받던 시기였으므로 신정왕후를 비롯한 중신들과 유림이 이를 비판, 흥선대원군은 그 혐의를 벗고자 천주교인을 대대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합니다.

    1866년 2월 조선은 천주교를 불법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이를 믿는 자들을 체포, 이에 베르뇌 주교 등 프랑스 인 신부 9명 과 남종삼, 홍봉주를 비롯한 많은 조선인 신자가 붙잡힙니다.

    같은해 3월 베르뇌 주교 등 프랑스 신부 9명, 남종삼, 홍봉주 등 많은 조선인 신자가 처형되며 체포되지 않은 프랑스인 신부인 페롱, 펠릭스 클레르 리델 , 깔레 는 공주와 진천 등지에 숨어지내며 서로 연락하고 병인박해를 프랑스에 알리고자 리델 신부를 청에 보내기로 합니다.

    리델 신부는 조선인 신자들의 도움으로 베이징에 도착, 1966년 7월 8일 청의 텐진에 있던 프랑스 극동함대 사령관 피에르 로즈에게 병인박해의 전말을 보고, 이는 1866년 9월 병인양요의 발발 원인으로 작용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