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솔리니가 자신의 사위를 처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무솔리니는 당시 외무장관이었던 사위 치아노 백작을 처형해서 딸인 에다와 사이가 벌어졌는데 무솔리니가 자신의 사위를 처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체자레 데 베치와 무솔리니의 사위인 외무장관 갈레아초 치아노는 무솔리니 해임 음모에 가담, 1943년 7월 24일 파시스트 당 대회에서 치아노 장관과 디노 그란디 파시스트 최고평의회 의장의 주도호 무솔리니 탄핵 결의안이 19대 7로 통과되었고 다음날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가 탄핵 결의안을 추인하고 무솔리니를 해임합니다.
무솔리니는 자신을 쫓아낸 사람들에게 자신의 손이 닿는 한 피의 복수를 감행하여 사위인 치아노와 에밀리오 데 보노를 비롯 7명을 총살했습니다.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갈레아초 치아노 백작은 제2차 세계 대전내내 무솔리니 정권 하에서 외교업무를 맡다가 전쟁이 이탈리아에 불리해지자 장인어른인 무솔리니에 반대하여 그를 합법적으로 실각시키려 했다. 갈레아초와 국가 파시스트당 최고평의회 의장 디노 그란디는 1943년 7월 24일 파시스트당 긴급 최고평의회를 소집, 무솔리니 탄핵 결의안을 19대 7로 통과시켰고, 다음날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가 탄핵안을 추인하고 무솔리니를 해임, 체포하였다.
그러나 탄핵 후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9월 12일, 오토 스코르체니가 지휘하는 독일 국방군 특공대가 체포된 무솔리니를 구출하여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의 수장으로 옹립했고, 수도 로마는 독일군에게 장악되었다. 사위가 자신을 배신한 것에 격분한 무솔리니의 명령으로 독일군에게 반 파시스트 혐의 및 반역으로 체포됐으며 합법적으로 사형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