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는 고려말부터 조선 초기 관료로서 정적없이 생활한 것으로 보입니다. 황희는 태종, 세종에게 큰 신임을 받아 왕구너 측 중앙 정객이었으며, 세종 재위시에는 18년간 영의정으로 재직하였습니다. 그는 왕권 쪽의 핵심 인물이지만 동시에 관료들과 협상, 조정을 하면서 자기 파벌 없이 생활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리고 그가 파벌 없이 비치는 것은 행정 실무형 관료이며, 청렴한 명신 이미지를 유지하려는 노력 덕분입니다. 다만 윤회 맹사성과 갈등하기도 했지만 조정자, 중립자로 역할에 충실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