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명성황후는 국모라며 대한민국에서는 칭송하나요?
사실 조선 말기는 정말 나라라고 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왕실은 썩었고 신하들과 관리도 엉망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명성황후는 무슨 업적을 남겼길래 조선의 국모네 혹은 뮤지컬 같은 것을 만드는 것일까요?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국사에서도 자주국일 때는 왕의 정실부인을 왕후로 불렀지만[4][5] 이 사실은 인지도가 높지는 않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자주국 왕의 정실부인을 왕후가 아닌 왕비로 호칭하는 경우가 많다. 서양과 동양의 작위 체계를 1대1 대응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므로 서양 국가 군주의 아내를 왕후, 왕비 신경쓰지 않고 그냥 왕비로 번안하지만, 한자문화권에서의 왕비는 전술되었듯 제후국 왕의 정실부인이므로 정확한 번안이라고 보기에는 애매하다.
국모는 황후를 부르는 다른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출처: 나무위키 왕비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명성황후는 비밀리에 많은 독립단체를 후원하고 일제에 당당하게 맞썻기 때문입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물론 조선말 고종이나 왕실은 너무나 많은 잘못을 저질렀지요. 하지만 명성왕후는 일본 세력을 등에 업은 흥선 대원군이 재 등장하여 갑오개혁을 실시하자, 러시아 세력을 이용하여 일본 세력을 추방하려 하였습니다. 이에 일본 정부의 사주를 받은 주한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가 1895년 일본 낭인을 궁중에 잠입 시켜 명성 황후를 시해 하였지요. 명성황후는 적어도 지나친 쇄국과 급진적 개혁 사이에서 중심을 잡고자 노력했고, 열강들을 이용해 나라의 독립을 유지하는 외교술을 펼쳤으며, 그녀가 의도적으로 키운 외척 들이 훗날 고종의 측근이 되어 다 쓰러 져 가는 조선을 다시 세우고자 대한제국이라는 마지막 시도를 해볼 수 있게 했고 이것이 독립 운동과 이어졌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다른것을 차제 하고라도 한나라의 왕비가 적국에 의해 시해를 당했다는 것 만을 놓고 봐도 그 긴박함이나 억울함은 드라마나 영화 같은 요소에서는 굉장히 드라마틱한 요소임에는 분명 하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말 궁에 드나들며 명성황후를 만났던 사람들의 기록에 의하면 명성황후는 세계가 돌아가는 사정에 관심이 많았고 조선의 이익을 생각하는 외교관적 자질이 풍부한 여성이라고 합니다.
또 일본이 한 나라의 왕비를 죽였다는 것을 보면 그녀가 조선에 미치는 정치적, 외교적 영향력이 컸음을 알수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조선이 근대화를 이루는데에는 기여하지 못했고 등용한 민씨 일가들이 부정부패를 저지른것 또한 사실, 백성들의 삶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외교에 나섰고, 조선을 차지하려는 강대국들 틈에서 줄다리기를 하려했던 점은 좋은 평가를 받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