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비담의 난 때 왕위찬탈의 명분이었던 여주불능선리는 왜 16년이 지난다음 나오게 된 건가요?
신라의 선덕여왕이 집권한 지 16년이 지나서
비담의 난이 일어났고
비담이 난을 일으킨 명분이
여주불능선리라고 알고 있습니다
여주불릉선리란 명분은 선덕여왕 집권 초기에나
나올 법한 명분인데
왜 집권한 지 긴 시간이 지나서
왕위를 찬탈하는 데 하나의 명분이 되었던 것인가요?
왕위 찬탈의 명분 치고는 시기도 맞지 않고
명분으로써도 너무 빈약한데
비담이 난을 일으키며 뜬금없이
여주불능선리의 명분들 들고나온
숨겨진 이유와 당시 시대에 어떤 환경들이
저 명분을 정당화시킬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비담이 여주불능선리를 난의 명분으로
내세운 숨겨진 의도가 무엇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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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답변이 있어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비담은 645년 상대등에 올라 귀족회의의 의장이었습니다. 그는 선덕여왕의 심장병이 악화되자 왕위 찬탈을 노린 것입니다.
비담은 명분으로 "여주불능선리(女主不能善理, 여자 임금은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다.)" 내세워 선덕여왕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권력을 확장하려 하였고, 염종과 함께 647년 1월에 월성을 공격했으나 김유신에 패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