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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오
파라오23.03.19

경제 대공황에 대해서 여쭈어 봅니다.

세계사를 한번이라도 접해봤다면 모두가 들었던 경제 대공황은 전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하지만 모든 역사 교과서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세계사에 나오는 경제 대공황은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 미국, 유럽에 관해서만 서술합니다.

그래서 궁금했던것은, 당시의 조선이었던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였는데,

우리 나라와 같이 그때 당시의 식민지들은 어떻게 됐나 하는 겁니다.

서문이 길었는데, 요약하자면

경제 대공황 당시의 식민지들은 어떻게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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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6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류경태 경제·금융전문가입니다.

    단순하게 경제대공황으로 인해서 식민지국가들에게 미친 영향만을 질문하신 것이라면 세계 대공황으로 인해서 당시 식민지 국가들에 있어서 피해가 간것은 거의 전무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 이유는 세계 대공황이 발생한 이유와 세계대공황이 미친 범위를 생각하면 너무 쉽게 답이 나오는 것인데, 세계 대공황은 '부풀려진 생산체계와 과대한 생산으로 인해 팽창한 경제'가 문제가 된 것인데, 이 생산을 받아줄 수요를 '전쟁'을 통해서 충족시켰던 시기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버블이 생겨난 국가들은 당연하게도 이 수요를 통해서 이익을 얻었던 식민지 지배국가들이었으며, 이 지배국가들은 부풀려진 생산을 감당하고 소비시킬 공간이 더이상 남아있지 않게 되자 생산의 버블이 터지면서 발생한게 대공황입니다. 그럼 당연히 지배를 받던 식민지 국가들은 이 버블로부터 얻어진 이익이 없다보니 대공황으로부터 피해를 입을 것도 전혀 없던 것입니다. 바닥의 경제 상태에서 바닥을 친다고 해서 달라질 수 있었던 것은 없습니다.


  • 안녕하세요. 정의준 경제·금융전문가입니다.

    1929년 미국 주식시장의 폭락으로 시작된 대공황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으며 당시 식민지였던 국가를 포함하여 많은 국가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국(당시 조선)과 같은 식민지는 수출과 수입을 식민지 주인에게 의존했기 때문에 대공황의 경제적 충격에 특히 취약했습니다. 그 결과 이들 국가 중 다수는 경제적 쇠퇴와 사회적, 정치적 불안정을 경험했습니다.

    한국의 경우 대공황은 일본에 대한 농산물 및 공산품 수출에 크게 의존하는 경제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1930년대 초반 일본 경제가 휘청거리기 시작하자 한국으로부터의 수입을 줄임으로써 한국의 수출이 급격하게 감소했고 이에 따라 경제도 쇠퇴했습니다. 대공황은 또한 한국에 만연한 빈곤과 사회적 불안을 가져왔고, 이는 민족주의 운동의 발흥에 기여했고 궁극적으로 일본으로부터의 한국의 독립 투쟁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현빈 경제·금융전문가입니다.

    미국의 경제 대공황은 1929년 10월 24일인 "블랙몬데이"를 시작으로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대규모 경제위기로 발전했습니다. 이러한 대공황은 세계 경제의 균형을 깨뜨리고, 수많은 국가와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대공황 초기에는 외국으로의 수출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적극적인 산업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외부에 노출된 경제라는 측면에서 직접적인 영향은 그렇게 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미국 등 주요 국가들의 경제위축으로 인한 수출 감소, 수입 감소, 대외적인 자금난, 실업률 증가 등의 부정적인 영향은 우리나라 경제에도 미치게 되었습니다. 특히, 일본의 경제침체로 인한 대출 증가와 당시 국내 외환시장의 불안정 등으로 인해 우리나라도 실업률 증가, 불황 등의 현상을 겪었습니다.

    따라서, 미국의 경제 대공황은 세계적인 대규모 경제위기였기 때문에, 우리나라 또한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그 영향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경제·금융 전문가입니다. 당시 일본은 은행 경영의 불안으로 금융 공황을 겪은 후, 강력한 디플레이션 정책을 실시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정부는 제1차 세계대전 중 정지한 금본위제로 복귀하기 위해 긴축 정책으로 전환하고, 1930년 금 수출을 허가하였다고 하지요. 환율 안정에 기초해 산업을 합리화하고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금본위제의 경기 조절 기능으로 경제를 정상화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대공황과 맞물려 정화(正貨)인 금이 대량으로 유출되었는데 . 주가와 물가가 폭락하고, 기업 도산으로 실업이 증가하는 한편 국제수지가 크게 악화하였다고 합니다. 특히 미국 수출이 격감해 생사 가격이 폭락했고, 연쇄적으로 다른 농산물 가격도 떨어져 이른바 농업 공황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쌀의 경우, 디플레이션 정책과 풍작 그리고 조선 등으로부터 유입으로 인해 가격 하락의 피해가 매우 컸다고 하네요. 따라서 쌀농사와 양잠을 중심으로 하던 일본 농촌은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조선에서는 1910년대 식민지에 대응한 경제구조로 재편되었고, 1920년대 총독부가 산미증식계획(産米增殖計劃)을 중심으로 산업정책을 추진하였다고 하지요. 이를 통해 쌀 생산이 늘었지만, 생산량 증가 이상으로 많은 쌀이 거의 일본으로 수출되면서 지주제 하의 농업과 농민은 파탄에 이르렀고 수출된 쌀은 일본의 식량 문제와 국제수지 대책에 활용되었는데, 대공황 시기에는 오히려 쌀값 하락을 초래하였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김한 경제·금융 전문가입니다.

    식민지는 이미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상태이기 때문에 경제대공황이 왔는지 조차 모를 정도였고

    빼앗을게 많아지니 고통은 더 컸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경제 대공황이라는 것은 사실상 이미 발전한 큰 나라에서 경제 버블이 터진 것인데

    당시에 한국과 같은 식민지는 그런 주식시장이나 큰 화폐가치가 없고 산업시대도 아니였기 때문에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정진우 경제·금융전문가입니다.

    경제 대공황은 1929년 미국에서 발생한 금융위기를 시작으로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때 당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일본의 경제 대공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일본은 1920년대 후반에 경제성장을 이루다가 1929년 미국의 경제 대공황으로 인해 일본 경제도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이에 따라 일본은 식민지인 조선을 비롯한 자신의 식민지들에서 자원과 원재료 등을 대량으로 수입하면서 경제적 수혜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조선에 대한 불법적인 착취를 강화하면서, 조선의 경제적인 어려움도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또한 일본은 조선에서 소비재를 생산하게 하면서 일본에서는 고부가가치 산업을 집중적으로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따라서 경제 대공황 당시의 조선인들은 일본의 식민지에서 어려움을 겪었으며, 이후 일본의 식민지 체제가 더욱 강화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