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대야성은 어떠한 이유로 난공불낙 이었던 것인가요?
대야성은 어떤 이유로 공성 쪽에서 매우 고전을 하였던 성인지요? 대야성은 험준한 산에 위치하지 않은 평지성이 아닌가요? 혹시 이유를 아신다면 답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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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답변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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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지형학적으로 이점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합천군 합천읍 합천리 읍내 지역에 해당한다. 이 주변의 지리를 살펴보면, 일단 아래쪽은 낙동강의 지류치고는 제법 큰 강인 황강이 사방을 두른 채 흐르고 있어서 강을 건너 상륙하는 것을 철저히 막아낸다면 반도에 가까운 지형이라 볼 수 있습니다. 북쪽과 서쪽은 산이 가로막고 있어 백제, 후백제가 육로로 쳐들어올 수 있는 길은 서북쪽과 동북쪽 2곳 뿐입니다. 그런데 둘 다 산줄기 사이의 좁은 길이라 각 잡고 방어하면 뚫기가 어렵고, 그 산은 가장자리가 강에 깎여서 비탈이 바위절벽입니다. 그렇다고 황강을 건너서 상륙하기는 적의 방해가 있으면 당연히 힘들고, 황강 위로 배를 띄워서 수군으로 공격하려고 해도 황강 서쪽(즉 백제 쪽)은 강폭이 좁고 얕아서 뗏목 수준이 아니면 군함을 띄우기 어려운 편입니다. 반면 강 동쪽(신라 쪽)은 강폭이 넓어서 신라 본진에서 낙동강을 타고 지원군과 보급을 보내기는 쉽다. 큰강이 인접해 있어 식수 확보도 쉽고 성 근처에 평야도 꽤 있어서 평시에 몇천 명 먹여살릴 군량미도 꽤 쌓아둘 수 있고 어느 정도는 농사지어서 자체 보급이 가능하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