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시대 유유가 죽인 장수가 왕기가 맞나요?
고구려와 위의 전투에서 마지막에 밀우의 항전과 유유의 암살로 나라가 망하는것을 면하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당시 유유가 죽인 장수가 왕기인가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구려-위나라 전쟁은 242년 -259년이라고 합니다.
동일 전쟁에서 일어난 사건인 것 같으나 유유의 계책으로 죽임을 당한 장수가 왕기인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왕기는 246년, 고구려의 충장 유유(紐由)의 계책으로 죽임을 당하고 패배하여 본국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이때 유유가 살해한 인물이 왕기라고 하는데, 왕기는 그 후에도 등장하므로 다른 인물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경제·금융전문가 조유성 AFPK입니다.
✅️ 네, 맞습니다. 유유가 왕기를 죽임으로써, 위나라가 고구려로부터 후퇴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줬다는 점에서 당시 고구려 왕이었던 동천왕의 입장에서 유유는 그저 충신 of 충신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사기에서 10월에 관구검이
환도성을 쳐서 무찌르고 장군 왕기를
보내어 임금을 추격케 했다는 부분
때문에 고구려의 충신 유유의 자살
공격으로 246년 죽임을 당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삼국사기 밀우, 유유 열전에서는
죽은 장수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고 그냥 '위나라 장수(魏將)'라고 나오며,
정사 삼국지에서는 왕기가 현도군 태수로 고구려와의 전쟁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도 행적이 보이는 것을 봐서는
왕기 본인이 부활 아니라 왕기군의
선봉장이 죽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구려 동천왕 때 고구려 사람 유유는 246년 위나라 장수를 죽인게 맞습니다.유유는 항복 하는 척 하다가 왕기를 칼로 죽였고 본인도 이 과정에서 죽었다고 합니다. 유유의 이러한 희생으로 인해 고구려는 위나라의 공격을 막을 수 있었다고 전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