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시대에는 문과와 무과가 따로 구별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강감찬도 문관이지만 거란의 3차 침입때 장군으로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로 넘어 오면서, 문과와 무과가 나누어졌습니다.
그리고 성리학을 기초로 하여 무관보다 문관을 더 높였습니다.
조선시대의 문관들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당파 싸움입니다. 실제로 당파 싸움으로 수많은 사화들이 발생되었고, 나라가 피폐해지는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문관들은 당파싸움이나 할줄 아는 인간들로 낙인찍힌것을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