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강조의 정변이 일어난 배경을 알고 싶습니다
고려시대 초기 강조의 정변이라는 중대 정변이 있었는데요 상대적으로 그 내용이 덜 알려져 있는 것 같습니다 강조의 정변은 어떤 정변이었고 그 배경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강조가 목종을 폐위시킨 뒤 살해하고 현종을 옹립한 사건을 말합니다.
1003년(목종 6)에 천추태후와 김치양 사이에 아들이 생기자
천추태후는 김치양과 더불어 목종에게 아들이 없음을 기화로 그에게 왕위를 계승시키려 하였습니다.
강조의 정변은 천추태후와 김치양의 모의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강조는 왕명을 받고 개성으로 오던 중에 왕이 이미 죽었다는 헛소문을 듣고 본영으로 되돌아갔으나, 정난의 뜻을 품어 다시 군사 5천인을 이끌고 개성으로 향하였습니다. 평주(平州 : 지금의 황해도 평산)에 이르러 왕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주저하다가 목종이 생존하는 한 천추태후와의 관계로 김치양 일파를 제거할 수 없다고 판단해, 왕의 폐립을 결심하고 분사감찰어사 김응인을 신혈사에 보내어 대량원군을 맞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목종에게 변을 일으키게 된 명분과 퇴위를 요구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강조의 정변은 1009년 강조가 목종을 시해하고 일으킨 정변입니다.
고려 제 7대 왕 목종이 18세에 즉위했으므로 모후인 천추태후가 섭정을 하게 되자 귀영보냈던 천추태후의 정부 김치양을 다시 불러들였고 목종은 20세가 넘도록 후사를 얻지 못했는데 1003년 갑자기 병석에 눕게 됩니다. 이때 천추태후와 김치양은 그들 사이에서 난 자식으로 목종의 뒤를 잇게 할 음모를 꾸미고 이 음모를 안 목종은 욱의 아들 당숙 대량군에게 자기의 뒤를 잇게 하고 ,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서북면도순검사 강조에게 왕궁을 호위할 것을 명합니다.
이때 나라 안에는 온갖 소문이 유포되는데 임금은 병환이 몹시 위중하여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고 김치양 일파는 임금이 병중에 있음을 기화로 왕위를 빼앗으려 한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이번에는 목종이 죽었다는 헛소문이 나돌았고 이렇게 되자 강조는 김치양 일파를 몰아내고 목종의 뜻대로 대량군을 임금의 자리에 앉히려 합니다. 강조가 군사 5000명을 이끌로 개경으로 오던 중 목종이 아직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입장이 난처해진 강조는 어차피 목종으로서는 나라를 흥하게 하기 힘들것으로 판단, 부하 제장과 의논한 후 별장으로 하여금 대량군을 맞이하게 하고 자신은 개경으로 들어가 목종에게 퇴위를 강요합니다.
강조는 목종을 폐위시킨 후 대량군을 내세워 왕으로 삼았고 이와 동시에 김치양 부자를 죽이고 천추태후와 그 일당을 모두 귀양보냈으며 1009년 폐위시킨 목종을 시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