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 노란 꼬까신하나 라는 동요작가는 누구인가요?
개나리 노란 꼬까신 하나 가지런히 놓여 있는 꼬까신 하나
아기는 살짝 신벗어놓고~ 라는 동요가 있잖아요 봄만 되면 흥얼되는 이 동요는 아는데 정작 작가는 모르고 있네요 작가는 누구인가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꼬가신의 작곡가는 손대업(1923~1980년), 작사는 최계락(1930~1970년)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꼬가신의 작곡가는 손대업(1923~1980년), 작사가는 최계락(1930~1970년)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 음악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다. 꽃그늘과 꼬까신에서 느끼는 정다움과 포근하고 한가로움이 봄날씨와 잘 어울려 한층 따스하게 해 주고 있습니다.
출처: 문화포털 '예술지식백과'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꼬까신 작사자는 최계락 경상남도 사람입니다.
시인입니다.
어느날 제가 운영하는 매장에 오신분이 따님이라고 했던기억이 납니다.
안녕하세요. 확인 결과 최계락님으로 확인됩니다.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아동 문학가이며 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최경호이고, 어머니는 이증수입니다.
참고로 활동 사항은 아래 참고 바랍니다.
최계락(崔啓洛)[1930~1970]은 1930년 9월 3일 경상남도 진양군 지수면 승내리 597번지[현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진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아대학교 문학과를 중퇴하였다. 학생 때부터 활발한 시작(詩作) 활동을 하였으며, 1943년 진주중학교에 입학한 후 『문예 신문』에 동요 「고갯길」을 발표하였고, 『봉화』 지에 동요 「보슬비」, 「해저문 남강」을 발표하는 등 천재성을 보였다. 이중 「보슬비」는 초등학교 교재에 수록되기도 하였다. 진주고등학교 재학 시절인 1947년 『소학생』 지에 발표한 동시 「수양버들」이 추천을 받으면서 등단하였다.
1948년 9월 『경남 일보』 기자가 되었고, 1951년 이형기(李炯基)와 함께 동인지 『이인(二人)』을 발간하였다. 1952년에는 월간 아동 잡지 『소년 세계』의 편집 기자가 되었다가, 1953년 대구에서 육군 종군 정찰용 기관지 『전선 문학』 편집을 맡았다. 1956년 부산의 국제신문사에 입사하여 문화조사부장[1961], 편집부 국장 겸 정경부장, 사회부장[1966] 등을 역임하였다. 동시에 동시 시인으로도 열정적인 삶을 살면서, 1958년 이주홍(李周洪)과 함께 부산아동문학회를 결성하고 부산 아동 문학의 초석을 다졌다.
최계락의 삶은 문학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순수하고 투명하고 꾸밈없는 작품처럼 그의 삶도 순수하고 인정 많고 베풀기를 좋아하면서 청빈한 삶을 살았다는 평이었다. 1970년 7월 4일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사후 최계락이 활동하였던 부산광역시와 고향 진주시, 그리고 선조의 유택이 있는 경상남도 고성군 등에 시비가 다수 건립되었다. 또 2001년 동생 최종락이 최계락 문학상을 제정하여 해마다 시인과 동시 시인 중에서 수상자를 선정하여 시상하는데, 2008년부터는 국제신문사와 공동으로 시행하고 있다.도움이 되셨다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동요: 꼬까신
작사 : 최계락
작곡 : 손대업
개나리 노오란 꽃그늘 아래
가지런히 놓여있는 꼬까신 하나
아기는 사알짝 신 벗어놓고
맨발로 한들한들 나들이 갔나
가지런히 기다리는 꼬까신 하나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 동요의 제목은 꼬까신 입니다.
꼬까신의 작곡가는 손대업, 작사가는 최계락 입니다.
안녕하세요. 엄재희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꼬까신 이라는 노래로
최계락 시인이 노랫말을 만드시고
손대업 님이 작곡하신 예쁜 동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