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송대에 성장을 거듭하던 과거제는 몽골제국 시기에 들어서는 거의 실시되지 못했ㅡㄴ데 제국 말기 유학에 다소 호의적이었던 아유르바르와다[仁宗]가 1313년에야 과거를 실시했을 뿐이었다고 합니다. 이는 쿠빌라이를 비롯한 몽골 대칸들이 학교나 과거에 흥미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문인 관료의 출사는 매우 제한적이어서 다음 기록에 따르면 5%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고 합니다. 원나라의 인구비를 살펴보면 몽골인 100만 명, 색목인 수백만 명, 한인 1,000만 명, 남인 6,000만 명가량으로 구성되어 있었스비다. 그런데 아무리 몽골군이 강하다고는 해도 몽골인과 색목인으로 6,000만 명을 지배한다는 건 너무 힘든 일이라 제3계급인 한인을 활용했습니다. 고려인은 3계급에서 우대받은 편이라(처음부터 우대받은 건 아니었고, 고려가 부마국이 되고난 뒤 세월이 지날수록 지위가 나아졌습니다. 고려인만을 대상으로 뽑는 과거제도(괴과-魁科)를 시행하기도 했고, 여기서 장원급제한 전원발같은 경우는 병부상서까지 오르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 밖에 이곡, 최해 같은 이들이 원나라 과거에 급제하는 등 고려인 관리도 드물지 않게 있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