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에 주몽 아들은 유리는 형들 제치고 왕이 될수가 잇엇나요
고구려에 주몽 아들 유리는 어떤게 형들은? 제치고
왕이 될수가 잇엇나요 소서노 자식들은 정말 주몽 아들 이엇나요 아니면 남다른 자식이엇나요?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유리의 출생년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기원후 18년에 사망한 것으로 전한다. 고구려 제2대 왕이며, 유리명왕(瑠璃明王)이라고도 한다. 재위 기간은 서기전 19년부터 서기 18년까지였다. 이름은 유리(類利), 유류(儒留) 또는 누리(累利)라 했고, 『위서(魏書)』 고구려전에는 여달(閭達), 여해(閭諧)라고 적혀 있다. 동명왕 주몽(朱蒙)의 맏아들이다. 어머니는 예씨(禮氏)이고, 왕비는 다물후(多勿侯) 송양(松讓)의 딸이다. 다음은 유리왕 신화이다.
유리왕은 기원전 19년 즉위하였다. 왕의 이름은 유리(類利) 혹은 유류(孺留)라고 일컬어지는데 고구려 시조 주몽(朱蒙- 동명왕)의 원자(元子)이고 어머니는 예씨(禮氏)이다. 처음 주몽이 부여에 있을 때 예씨에게 장가를 들어 임신이 되고 주몽이 망명한 후에 유리가 태어났다. 유리가 어릴 때에 거리에 나와 놀며 참새를 쏘다가 잘못하여 물을 길어 가던 여인의 물동이를 깨뜨려 여인이 꾸짖기를, 이 아이는 아비가 없어 이같이 미련한 짓을 한다고 하였다. 유리는 부끄러워하면서 집에 돌아와 어머니에게 내 아버지는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가를 물었다. 그 어미가 말하기를 "너의 아버지는 보통사람이 아니며 이 나라에서 용납되지 않으므로 남녘땅으로 망명하셔서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되셨다. 망명하실 때에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대가 만일 사내아이를 낳으면 내가 가졌던 유물을 일곱 모가 난 돌 위 소나무 밑에 감추어 두었으니 이것을 찾아 가지고 오면 나의 아들로 맞겠다.'고 하셨다."
유리는 스스로 산골짜기로 다니면서 찾았으나 얻지 못하고 지치고 피로해서 돌아왔다. 유리는 집 기둥에서 슬픈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보니 그 기둥은 주춧돌 위에 소나무였고 주춧돌은 일곱 모로 되어 있었다. 유리는 스스로 이를 해석하되 일곱 고개 일곱 골은 일곱 모요 돌 위에 소나무는 곧 기둥이라 하고 일어나서 가 보니 기둥 위에 구멍이 있어서 부러진 칼 한 조각을 얻고 매우 기뻐했다.
드디어 전한(前漢) 홍가(鴻嘉) 4년 하사월(夏四月)에 이것을 가지고 옥지(屋智), 구추(句鄒), 도조(都祖) 등 3인과 더불어 길을 떠나 졸본(卒本)이 이르러 부왕(父王) 주몽을 만났다. 유리는 왕에게 칼 한 조각을 바치니 왕이 가지고 있던 칼 한 조각을 꺼내어 이를 맞추자 피를 흘리며 이어져서 하나의 칼이 되었다. 왕이 유리에게 실로 자신의 아들이라면 어떤 신성함이 있는가 물어보았더니 유리는 소리에 응해서 몸을 들어 공중으로 솟으며 창을 타고 해에 닿아 그 신성의 기이함을 보였다. 왕은 크게 기뻐하며 세워서 태자를 삼았다. 이 때는 기원전 19년으로 이 해에 주몽은 유리에게 왕위를 계승하였다.
출처 : 오방대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