솥위에 올려서 떡을 해먹는 시루는 언제부터 사용되었나요?
우리나라에만 있는 물건으로 떡을 만들어 먹는 시루라고 있습니다 솥에 올려서 떡을 만들어 먹는 시루는 언제부터 사용하였나요? 우리나라 역사가 시작되면서라고 알고 있는데 정확히게 시루는 언제부터 인가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예부터 조상들은 철마다 또는 각종 경조사 때마다 떡을 해서 나눠 먹었으며, 그 중에서도 시루떡은 가장 많이 해먹는 떡이었다. 붉은 팥떡은 지금까지도 이사떡으로 이웃에 돌리는 풍습이 남아 있다.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에서 붉은 팥시루떡은 상달 시식으로, 붉은팥을 고물로 하여 햇곡식으로 시루떡을 쪄서 마구간과 방안에 차려놓고 주인의 생기복덕을 비는 치성을 하거나 고사를 지냈다고 하였다.
-출처:위키백과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시루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황해도 안악군 오국리 안악3호분 무덤 벽화에 고구려 여인들이 집안일을 하는 모습이 그려져있는데 이 그림에 부뚜막에 놓인 시루와 함께 오른손에는 주걱, 왼손에는 젓가락을 들고있는 여인이 있습니다.
시루에 물을 축여가며 긴 젓가락으로 음식이 익었는지 찔러보는 모습으로 추정합니다.
실제 평안남도 평성시 지경동 1호 무덤에서 출토된 시루 유물의 경우 4세기 말~5세기 초 고구려 시대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안악 3호 무덤 벽화에 나오는 시루 형태와 매우 흡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이병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시루는 한국 고유의 찜기입니다.
역사는 삼국시대 때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구려시대 무덤 벽화에 고구려 여인들이 집안일을 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이 그림에서 부뚜막에 놓인 큰 시루와 함께 주걱과 젓가락을 들고 있는 여인이 그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평안남도 평성시 지경동 1호 무덤에서 출토된 시루 유물의 경우
4세기 말~5세기 초 고구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초기의 시루는 청동기 후기에 주로 한반도 북부와 남부 일부 지역의 농경이 발달하기 시작한 곳에서 발견된다. 시루는 고대인의 식생활에서 곡류가 점차 중요한 식량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이를 경제적이고 효율적으로 조리할 수 있는 조리도구로서 등장하기 시작한 것으로 생각된다. 원삼국시대에 들어서면 국가적인 관개농업과 수전농업의 장려로 농업 생산량의 증가하게 되고 도정 ∙ 제분 기술의 발달로 많은 양의 곡물을 도정할 수 있게 됨으로써 곡물이 주식으로 자리 잡게 되자 취사도구로써 시루의 필요성은 더욱 증대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원삼국시대에 이르면 부뚜막이 보급되면서 노지에서 조리할 때보다 조리시간이 이전보다 짧아지게 되는데 이와 같은 제변화는 원삼국시대 이후에 전국적으로 시루가 확산되는데 중요한 원인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4~5세기 이후에 철제솥(釜)의 출현은 이러한 취사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 철제솥의 사용으로 고대인들은 이전보다 빠르게 조리하면서도 탁월한 밥맛을 유지하는 취사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새로운 조리도구의 출현은 삼국시대 후기부터 통일신라까지 시루의 출토량이 급감하게 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동시에 이제까지 시루가 담당하였던 취사의 역할을 솥이 대체함으로써 증숙반(蒸熟飯)에서 자숙반(煮熟飯)으로 취사의 단계가 발달하는 동시에 시루가 현재의 용도로 전용(轉用)되는 계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