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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닥한파리23
김시민장군은 어떤 업적을 거둔 장군인가요?
임진왜란 당시에 바다는 이순신, 육지는 김시민 장군이 있었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렇다면 김시민장군은 어떤 업적을 거둔 장군인가요?
4개의 답변이 있어요!
김시민장군은 자는 면오, 시호는 충무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1차 진주성 전투에서 진주목사로 방어전을 전개하여 관군 3800명, 의병 2200명의 군대로 왜군 30000명의 군대를 7일간 막아내어 승리를 거둔 장군입니다.
다만 장군은 적의 총탄에 맞아 순국하십니다.
진주대첩은 임진왜란 3대 대첩에 들어가며, 이순신장군과 같은 충무라는 시호를 받게 됩니다.
이후 일본에서는 김시민장군이 무서워 진주목사라는 뜻으로 [모쿠소]라는 가부키에 조선군맹장으로 나오게 됩니다.
안녕하세요. 김시민 장군은 1578년 무과에 급제해 군기시에 입사했습니다. 임진외랜 당시 진주판관이던 김시민은 인근 지역의 군사와 의병과 연합하여 여러 차례 적을 크게 섬멸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공으로 진주 목사로 승진해 다시 경상우도 병마 절도사에 임명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안녕하세요 꽤 책임감 넘치는 감귤 입니다
김시민 장군의 생애와 업적에 대해 답변 드립니다
김시민 장군(1554-1593)은 1578년 무과에 급제하여 군기시에 입사하였습니다. 1583(선조 16) 조선 초에 귀화한 여진인 니탕개가 난을 일으키자 황해도도순찰사 정언신(鄭彦信)의 막하 장수로 이순신, 신립(申砬), 이억기(李億祺) 등과 함께 출정하여 무공을 세웠습니다. 이때의 공으로 김시민은 군기시판관(軍器寺判官)에 임명되어 다시 관직에 나아갔습니다.
1591(선조 24) 동인인 정언신과 서인인 조헌으로부터 동시에 천거 받아 진주판관으로 부임하였습니다. 제1차 진주성 전투는 1592년(선조 25) 10월에 있었는데, 김시민 장군이 이끄는 3천여 명의 조선군은 3만여 명의 왜군을 맞아 승리하였습니다. 진주대첩은 한산도대첩, 행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첩 중의 하나로 평가됩니다.
김시민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육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장군으로, 특히 한산도 대첩, 진주 대첩 등에서 활약했습니다. 그는 뛰어난 군 전략과 리더십으로 많은 전투에서 승리하며, 특히 진주 대첩에서 일본군의 공격을 막아내고 군을 지켜낸 업적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로 인해 "육지의 이순신"이라고 불리며, 그의 충성과 용맹함은 지금까지도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