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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왜 전쟁의 중심이 되었는가요

이스라엘 같은 경우에는 나라가 생긴지는 얼마되지 않는 국가라고 알고 있는데요

그리고 예로부터 이스라엘땅에서 매우 많은 전쟁이 있었다고 하는데 왜

이나라는 전쟁이 끊이질 않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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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답변이 있어요!
  • 비오는날의수채화
    비오는날의수채화

    이스라엘은 역사적으로 종교적, 민족적, 영토적 갈등이 깊은 곳이라서 그렇습니다.

    나라가 생긴 지 얼마 안 됐지만, 유대인과 주변 아랍 국가들 간의 오랜 적대감이 계속되고 있어요.

    또한, 성지라는 의미도 크고, 영토를 둘러싼 분쟁이 끊이질 않아서 전쟁이 계속되는 겁니다.

    이 지역은 역사적, 종교적, 정치적 이유로 언제든 긴장이 높아질 수밖에 없어요.

  • 힘으로 뺏었으니 다시 뺏길수도 있는것입니다.

    아직은 힘이 있어 뺏기지는 않았으나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것이고요.

    유대인들은 본인들이 신의 선택을 받았다고 생각하며 비유대인들의 생명과 재산을 빼앗는 걸 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악마들이 존재하는 한 전쟁은 피할 수 없습니다.

  • 라말이 끊이지 않는 까닭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지리적 요충지에 종교·민족 두 갈래의 국가 건설 운동이 맞부딪힌 채, 20세기 식민 지배의 후유증이 아직 매듭지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오래전부터 ‘전략적 땅’

    * 레반트(지중해 동부)는 아시아·아프리카·유럽을 잇는 육지 다리입니다. 고대 이집트-히타이트 전쟁부터 로마·오스만·영국에 이르기까지 제국들이 교역로와 항구를 차지하려고 겨뤘습니다.

    * 좁은 회랑을 누가 지배하느냐에 따라 동서 교역세가 바뀌었기 때문에, “이 땅을 빼앗기면 곧 패권을 잃는다”는 전략 논리가 뿌리깊게 남았습니다.

    ● 종교적 상징성

    * 예루살렘·헤브론·갈릴리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모두에서 성지입니다. 각 종단 내부에서도 “양보 못 할 좌표”라는 정체성 경쟁이 이어집니다.

    * 성지 관리권을 둘러싼 갈등은 정치 협정이 조금만 흔들려도 민감한 감정 갈등으로 번지곤 합니다.

    ● 19-20세기 ‘두 민족, 하나의 땅’ 문제

    * 19세기 말 유럽의 시오니즘(유대 민족 국가 건설 운동)과 아랍 민족주의가 같은 무대(오스만 팔레스타인)에서 동시에 꿈을 키웠습니다.

    * 영국이 1917년 밸푸어 선언으로 유대인 국가 건립을 약속하면서도, 같은 땅에서 아랍인의 자치를 암묵 지원해 두 민족 모두에게 상충된 기대를 줍니다.

    * 제2차 세계대전 뒤 UN 분할안을 거쳐 1948년 이스라엘 건국·1차 중동전이 터졌는데, 이 과정에서 70만 명가량의 팔레스타인인이 난민이 되면서 ‘귀환권·영토 회복’ 요구가 현재까지 이어집니다.

    ● 미해결 상태로 굳어진 안보·경계선

    * 1967년 3차 중동전(6일전쟁)으로 이스라엘이 서안·동예루살렘·가자·골란 일부를 점령한 뒤, 확정된 국경선이 없는 “휴전선 상태”가 지금도 계속됩니다. 점령지 정착촌 확대는 협상 불신을 키웠습니다.

    * 이스라엘은 “좁은 국토에서 선제 방어가 유일한 생존전략”이라 보고, 주변국·무장조직의 미사일·테러를 막겠다며 강경 대응을 반복해 왔습니다.

    ● 외부 세력 간 대리전 양상

    * 냉전기엔 미국-소련, 21세기 들어서는 미국-이란 축이 무기·자금·외교 지원으로 갈등 축을 굳혔습니다. 원유로 세계 경제가 얽힌 중동에서 완전한 ‘방관자’는 거의 없었습니다.

    * 2023년 10월 하마스의 기습과 이어진 가자 전면전은 2025년 현재도 휴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어, 이미 5만 명 이상 팔레스타인인과 1,700여 명의 이스라엘인이 숨졌다는 집계가 나옵니다.

    ● 물·토지·인구 압박

    * 요르단강과 지하수 분배, 제한된 경작지·주거지를 두고 실무 협상이 수십 년째 늘어져 있습니다.

    * 팔레스타인 난민·가자 지구 인구 폭발, 이스라엘 내부의 초정통파·이민 인구 증가는 “땅은 좁은데 사람은 늘어나는” 구조적 긴장을 낳습니다.

    ● 평화 시도와 걸림돌

    * 1979년 이집트-이스라엘, 1994년 요르단-이스라엘 간 평화조약처럼 ‘국가 대 국가’ 협정은 성사된 적이 있지만, 국가를 갖지 못한 팔레스타인 문제는 오슬로 협정 이후에도 최종 지위(국경·예루살렘·난민·정착촌)를 못 정했습니다.

    * 이스라엘 내 정치 분열, 팔레스타인 내 분열(팔레스타인 자치정부 vs 하마스)도 합의안을 내기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요약하면, 이 지역은 ①전략적 회랑, ②세계 3대 종교의 성지, ③20세기 식민·민족주의 엇갈림이라는 세 겹의 ‘양보 어려운 이유’를 안고 있습니다. 현대 이스라엘이 생긴 지 70여 년밖에 안 됐지만, 그 토대 위에 쌓인 상처와 이해관계가 복잡해 휴전(停戰)은 있어도 ‘완전한 종전(終戰)’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갈등이 “숙명”은 아니지만, 국경·난민·예루살렘 지위처럼 핵심 의제를 둘 다 수용할 절충안으로 묶기 전까지는 간헐적 충돌이 반복될 가능성이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