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은 실제 있었던 일인가요?
예전에 역사책을 보면서 과거 살수대첩, 귀주대첩같은 흥미있는사건들이 있었는데요.
지금와서 궁금한것이 해당사실들이 실제상황인지 부풀려진건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네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은 실제 있었던 사건이라고 합니다. 6세기 당시 중국은 수나라였고 고구려는 영양왕시절이었습니다. 수나라는 대규모인 병력 무려 백만대군을 동원해 612년 고구려를 침략해왔는데요.
당시 이런저런 공격을 했지만 고구려의 성벽방어로 수나라대군은 교착상태에 빠져 군량부족과 사기부족으로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이럴때 을지문덕은 수나라쪽으로 담화를 가는척 하며 수나라군의 안좋은 상황을 알게된후 거짓항복을 약속하며 다시 복귀한후 살수대첩으로 크게 대승한 이야기 인데요.
역사는 승리한 자의 기록이므로 어느정도 과장이나 오독이 있을수는 있지만 실제 있었던 사건인것 같습니다. 다만 살수를 행한 강이 청천강이라고 알려졌는데 이 강이 다른 상이었을것이라는 이견은 있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사기, 수서, 당서 등 1차 사료에 살수대첩이 수공이라는 기록이 없으며 1931년 조선일보에 연재되고 1948년 책으로 출간된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서 최초로 살수대첩이 수공이라는 서술이 등장합니다.
을지문덕의 지시로 고구려군이 상류를 모래주머니로 막아 놓고 수나라 군사들이 살수로 뛰어들었을 때 이를 터뜨렸다고 서술하는데 이후 우리나라에는 살수대첩이 수공이라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살수대첩은 완전무장한 30만 병력을 일거에 쓸어버리는 인위적인 수공은 현대의 기술력으로도 거의 불가능합니다.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6세기 후반 수나라가 중원을 통일하면서 동아시아 국제 질서는 전면적으로 변하였습니다. 4~6세기 중반 중원 지역은 남북조의 여러 나라로 분열되어 있어서 어느 한 나라가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지 못하였습니다. 남북조의 여러 나라는 물론이고 북방의 유연과 서방의 토욕혼, 그리고 동방의 고구려 역시 국제 관계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며 세력 균형을 이루었지만 수나라가 중원 지역을 통일하며 이 세력 균형이 무너졌습니다. 수나라는 자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 질서를 구축하고자 했고, 이를 위해 주변의 여러 나라를 압박하였습니다. 고구려 역시 수나라의 압박에 직면하였습니다.
고구려가 수나라와 국경을 마주한 것은 583년(평원왕 25년)이었습니다. 수나라는 요서 지역의 고보녕 세력을 제압하고 이곳으로 진출하여 현재의 조양시에 영주총관부를 설치하고 그 영향력을 확대하였습니다. 590년 수문제가 고구려의 평원왕에게 보낸 새서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수나라 중심의 국제 질서를 고구려에 강요하였습니다. 고구려는 가급적 수나라와의 대립을 피하며 기존 동북아시아의 국제 질서를 유지하고자 했지만 수나라의 압박 수위가 점차 높아지자, 598년(고구려 영양왕 9년) 요서 지역에 대한 선제공격을 감행하였습니다. 이에 수 문제는 30만의 병력을 동원해 고구려를 공격했으나, 수나라의 육군은 여름 장마를 만나 군량 수송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고 전염병마저 발생하였습니다. 또한 수군은 태풍을 만나 크게 고생했습니다. 결국 수나라는 상당한 병력을 잃고 회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고구려와 수나라의 관계는 표면적으로 안정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수나라는 요서 지역에 군진을 설치하고 대규모 장기전을 치밀히 계획하였습니다. 고구려 역시 이를 주시하며 전쟁에 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612년(영양왕 23년) 수양제가 112만 명이라는 역사상 최대의 규모의 병력으로 고구려를 침공하여 일대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전쟁에 관해서는 수서와 자치통감의 기록이 가장 중요하고 또한 상세합니다. 삼국사기 역시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을 기록하였지만 대부분 수서와 자치통감을 전재한 것입니다. 다만 삼국사기 열전의 을지문덕전은 전쟁의 승부를 결정한 이른바 살수대첩에 관한 내용이 요령껏 정리되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살수대첩은 612년(영양왕23) 7월,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에서 벌어진 주요 전투의 하나 입니다. 612년 7월 24일 을지문적이 지휘한 고구려같이 우중문과 우문술 등이 지휘한 수나라 군을 살수에서 크게 격파한 전투 입니다. 살수는 지금의 청천강 입니다.
한국전쟁 중 가장 인지도가 높은 승전 중 하나 이며 흔히 강감찬의 귀주대첩, 이순신의 한산도 대첩과 함께 한국사 3대 대첩이라고 불리웁니다.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살수 대첩은 실제 있었던 일지만 고고학자들의 논쟁은 그당시 그만한 큰 가죽부대를 만들거나 그 큰 댐을 막을 기술이 부족했으므로 사망자 수가 부풀려지고 , 부분적으로 막아서 제압했다고 생각합니다.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닙니다. 실제 있었던 우리나라 3대 대첩중 하나입니다.
612년(영양왕 23년), 제2차 고구려-수 전쟁의 대표적인 전투. 살수에서 고구려의 을지문덕의 주도 아래 이루어낸 대첩이자 한국전쟁사 중 가장 인지도가 높은 승전 중 하나이다. 흔히 강감찬의 귀주 대첩, 이순신의 한산도 대첩과 함께 한국사 3대 대첩이라 불립니다.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살수대첩은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과정 중 나온 주요 전투 중 하나로 살수는 현재의 청천강이라고 하면 실제 있었던 사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