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규는 거란의 2차 침입 당시 북방 요충지 흥화진을 끝까지 사수하며 거란의 남하를 지연시켰으며, 이후 후방에서 유격전, 기습전으로 수만명의 포로를 구출하였습니다. 또한 거란군의 보급로를 차단하여 거란의 남진을 방해했습니다.
1010년 거란의 성종이 40만 대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흥화진을 포위하자 양규는 도순검사로 약 3000명의 병력만으로 7일 이상 방어해 거란군의 진격을 묶어두었습니다. 특히 거란은 강조가 썼다는 거짓 항복 서신을 보내 양규에게 투항을 종용했으나 이를 배격하고 끝까지 성을 지켜냈습니다. 또한 결사대를 조직하여 통주로 이동해 병력을 수습하고, 곽주성을 기습하여 거란군 6000명을 섬멸하고, 성을 탈환하였습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기습전을 펼쳐 6500명의 거란군을 사살하고, 3만명의 백성들을 구출했습니다.
하짐나 1011년 1월 28일 애전 등 후방 전투에서 거란 선봉대와 교전 중에 전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