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관료들은 반역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사형에 처해지지 않고 중대 범죄를 저지르면 유배형에 처해졌습니다. 일단 유배형에 처해지면 유배지까지 가는 비용과 그곳에서 생활하는데 드는 비용 일체를 피유배자가 지불해야 했습니다. 심지어는 호송 관리들의 수고비까지도 부담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무고로 유배형에 처해진다면 엄청난 손실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배자의 신분이나 지위 인적관계와 복적가능성에 따라서 떠나는 유배지역이나 유배지에서 생활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고관이나 권신들은 유배지로 가는 길에 지방 관리들에게 향응을 제공받거나 유배지의 수령이나 아전들에게 깎듯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관리들은 유배지에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으며 비복(계집종과 사내종)까지 두고 살 수 있었습니다. 한편 같은 유배자라 할지라도 정치적 유배자는 울분을 참으며 보냈겠지만 정약용 정약전처럼 독서와 학문에 힘쓰고 글을 쓰면서 보내는 경우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