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기의 충렬왕부터 공민왕까지의 시기를 부르는 용어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고려 말에 원나라의 영향에 있던 시기인 충렬왕부터 공민황까지의 시기를 부르는 용어로 대몽항쟁기라고 부르는 것과 원갑섭기라고 부르는 것은 어떤 관점에 따라서 달리하는 건가요?
'대몽항쟁기'는 1231년 몽골의 침입 이후 1259년 몽골에 항복하고 1270년 개경 환도까지를 말합니다. 이 때는 수차례에 걸쳐 몽골군이 고려에 침략하여 수 많은 인명을 희생시켰으며, 영토를 황폐하기 하였습니다.
그리고 '원간섭기'는 몽골에 항복하고 개경으로 환도한 1270년 이후부터 1356년 공민왕의 즉위로 반원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할 때까지입니다. 이 당시는 정치적인 간섭 이외에도, 영토 상실, 관제 격하, 공물 요구, 몽골 풍 유행 등 내부 변화가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상훈 전문가입니다.
대몽항쟁기는 1231년(고종 18)부터 1259년(고종 46)까지 9차례에 걸친 몽골의 고려 침입으로 전쟁을 벌였던 시기를 말합니다. 이 시기는 최씨 무인정권시기로 강화도로 임시수도를 마련하고 몽골과 전쟁을 치뤘습니다.
하지만 오래된 전란으로 민심이 동요되자 최씨 정권도 약화되어 결국 김준등에 의해 무너집니다. 그리하여 고려 조정은 몽골과 화의를 맺을 결심을 하고 세자(후에 원종)를 보냅니다. 그런데 천우신조인지 당시 몽케칸이 죽고 몽골은 후계 다툼이 시작되고 있었는데 고려 세자가 쿠빌라이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당시 후계다툼에서 약세였던 쿠빌라이는 "당나라조차 이기지 못한 고려의 세자가 나에게 항복을 청하다니 이건 길조이다."라며 그를 우대합니다.
후에 쿠빌라이가 몽골의 칸에 추대되고 고려또한 일찌기부터 쿠빌라이를 지지한 까닭에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상당히 우대를 받습니다. 고려왕실은 몽골의 부마국이 되어 이후 왕부터는 왕의 시호에 '충'으로 시작하게됩니다(몽골에 대해 충성한다는 의미) 이때가 바로 원간섭기로서 공민왕의 반원정책에 이르기까지 계속 유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