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북한의 연안파는 어떻게 숙청이 되었나요?
일제 말에 결성된 조선독립동맹은 해방 후, 북한의 최대 계파인 연안파를 형성했는데,
과거 중국 공산당과 합작으로 전투를 참가할 정도면, 나름대로 북한 내에서도 영향력이 상당했을 텐데,
어떻게 해서 단기간에 숙청이 될 수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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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북한 정권 수립 과정 참여한 옌안파는 중국 화북 지방의 옌안을 거점으로 항일 독립전쟁을 전개한 조선독립동맹과 조선의용군 세력을 말합니다. 그들은 주로 국공 내전에 참전한 인물들을 제외하고 광복 직후 북한으로 입국하여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합니다. 대표적 인물로 김두봉, 김무정, 최창익 등이 해당됩니다. 그러나 옌안파들은 6.25 전쟁 책임을 물어 평양방위 사령관 어었던 김무정 등이 숙청되었습니다. 그리고 사회주의 건설 노선을 놓고 김일성 등 세력과 충돌하면서 1956년 8월 종파 사건으로 대부분 제거됩니다.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해방전후 북한의 브레인 집단은 김일성이 아니라 연안파라고 불리웠던 조선의용군 집단이었습니다. 해방후 조선의용군의 최두창 김무정 김두봉 등은 고위직에 올라서 독자적인 연안파를 형성합니다. 그들은 소련군정에 의해 거의 해체수준에 달하는 통제를 받았고 실제 6.25전쟁 당시 연안파의 무정장군을 낙동강 전선 패배와 평양 방어 실패를 구실로 중공군 참전 직전에 숙청하였습니다. 무정 이후 연안파의 수장이 된 최창익도 종파사건으로 감옥에 투옥되었다가 병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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