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초상화는 실제와 가까웠나요 아니면 허구에 가깝나요?
유튜브를 보면 어느 곳에서는 조선시대 초상화가 정말 실사에 충실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학회에서 복원한 이순신 장군은 우리가 아는 초상화와 달리 굉장히 사납다고 하는데 뭐가 맞는 건가요?
안녕하세요. 장서형 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초상화는 매우 사실적인 묘사를 지향했는데, 단순히 인물의 외모를 그리는 것을 넘어, 인물의 내면과 정신까지 담아낸다는 전신사조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이거는 익히 아실텐데, 극도의 사실성으로 얼굴의 점, 주름, 흉터, 심지어 마마자국이나 검버섯까지도 그대로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조선시대에서는 왕의 초상화인 어진을 비롯해 공신상, 사대부들의 초상화 등이 활발하게 제작되었고, 이는 유교 사회에서 조상을 공경하고 제사 지내는 중요한 수단이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안녕하세요. 윤지혜 전문가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조선시대 초상화는 실제 인물의 외모를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려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상화된 요소도 함께 존재했어요.조선시대에는 ‘전신사조’라는 개념이 중요했는데, 이는 단순히 얼굴을 닮게 그리는 것을 넘어서 인물의 인품과 정신까지 담아내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그래서 얼굴은 굉장히 정밀하게 묘사되었고, 실제로 “수염 한 올, 주름 하나까지도 다르게 그리면 그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극사실주의적인 표현이 강조되었죠.하지만 동시에, 초상화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제례용, 정치적 상징물, 도덕적 교화 수단으로도 사용되었기 때문에, 인물의 위엄이나 이상적인 성품을 강조하는 상징적 요소도 포함되곤 했습니다. 예를 들어, 배경은 생략되고 단정한 자세로 앉아 있는 모습이 반복되며, 복식이나 자세는 거의 정형화되어 있었어요. 어떻게 이해가 어느정도 되셧을까요
안녕하세요. 김찬우 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의 초상화는 현재의 극사실주의 회화 작품들과 맞먹을 먹도로 디테일이 엄청났습니다.
당시에는 초상화의 대상이 된다는 것 자체가 아주 영광스러웠고 초상화는 함부로 그릴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초상화는 사당에 따로 모셔둘 정도 였습니다.
그렇다보니 대상을 그릴 때 털끝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똑같이 그려야 한다는 일호일발 이라는 말이 있었으며 전신사조 라고 하여 그 사람의 정신까지 담아내야 한다는 것이 조선시대 초상화를 그리는 방법 이었습니다.
조선시대의 초상화가 세밀하였으나 아쉽게도 당시에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가 전신사조의 회화법으로 그려지지 않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있는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는 표준영정이라고 하여 조선시대에 그려진 것이 1953년에 그려진 회화입니다. 당시에 남아있는 자료가 없다보니 글에 묘사된 장군의 모습을 상상을 더하여 만들어낸 창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후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에 대한 자료들이 발견됨에 따라 표준영정의 모습과 달랐기에 계속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고 결국 학계에서는 과거의 자료들을 바탕으로 새롭게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를 복원하였습니다. 해당 작품이 기존의 작품들보단 험학하고 강인하게 보이는 모습입니다.
그럼 답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더 궁금한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문의 주십시요:)
안녕하세요. 한도리 전문가입니다.
좋은 질문이네요. 조선의 초상화는 기본적으로 실물과 닮게 그리는 사실화로 그려졌습니다. 그래서 솜털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묘사가 되었습니다. 다만 여기에서도 초상화 대상의 존엄성, 도성성, 학식 등을 나타내기 위해서 허구적인 느낌을 조금 가미하기도 합니다. 그렇다 하여도 사실화를 근간으로 그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