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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장군으로는 남이가 손꼽히는데 왜이리 젊은 나이에 죽었나요?

조선 전기의 장군으로는 남이가 손꼽히는데 왜이리 젊은 나이에 죽었나요?

28세의 나이에 죽었다는데요.

너무나 젊은 나이에 요직에 등용된게 결국 화로 돌아온건가요?

역모죄로 몰려서 그와 그와 친했던 사람들이 모두 화를 입을걸 보니까요

4개의 답변이 있어요!

  • 남이 장군은 유자광의 고변으로 역모 혐의가 씌워져서 죽임을 당합니다.

    26세에 병조판서에 올랐으니 너무 빠른 승진은 적도 만드는 법이겠지요.

    남이는 사후 350년이 지나서야 신원이 되었습니다.

  • 남이 생몰기간1441년~1468년

    조선의 개국공신 가문중 의령남씨가문에서 태어났으며 친할머니가 태종이방원의 딸인 정선공주로 태종이방원의 외종손이기도 한 인물입니다.

    세조 6년인 1460년에 무과에 급제해 관직에 진출하게 되는데

    그때나이가 지금 우리나이로18세로 조선 전기 문과에 급제하는 평균 나이가 30세 전후였고 무과도 그보다 약간 어리거나 거의 비슷했던 사실을 감안하면 18세의 무과 급제를 한것만 봐도 상당한 인재였음을 알수있습니다 그때당시 무과 급제자가 4명이었는데 남이는 장원은 아니었지만 그어마어마한 경쟁을 뚫고 무과에 급제한 이력에서 남이가 장수로서 역량이 뛰어난 인물이라는 데 이견을 내는 학자는 없다고 합니다.

    여러방면에서 능력을 인정 받아 우리나이 28세라는 나이에 최연소 병조판서(오늘날의 국방부장관)까지 올라가면서 승승장구하지만 예종 즉위년에 붕어한 선왕 세조의 측근에 의해 종2품 겸사복장으로 좌천되는데 아마 총애를 한몸에 받으며 승승장구하는모습을 아니꼽게 생각하던 그룹이 있었던듯 합니다. 결국 강순등과 함꼐 역모죄에 연루되어 28세 나이에 효수형에 처해져 죽임을 당합니다.

  • 남이 장군은 조선 전기의 무신(武臣)으로, 여진족 토벌에 큰 공을 세운 인물이자 민간과 무속에서 신앙되는 장군신의 하나. 17세 때에 무과(武科)에 장원급제하고 이시애(李施愛, ?~1467)의 난을 평정하였으나, 예종 때 훈구대신(勳舊大臣)들의 시기와 모함으로 역모의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정치적 희생양으로 젊은 나이에 죽은 것입니다.

  • 예종 때 훈구대신들의 시기와 모함으로 역모의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하였다고 합니다 생전의 위대한 업적이나 충정에도 불구하고 비극적인 죽음을 당한 장군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