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론
초기 고구려의 경제는 약탈 중심의 경제 체제였으며
오녀산성 이라는 도읍은 농경에 불리한 지역이고 인구 또한 많이 않았습니다.
●본론
곡식도 부족하고 인구도 적으니 부여나 옥저같은 강대국을 공격해서 이길 능력이 없으니 부여같은 강대한 집단의 변방으로 군소집단이 들어가서 말이나 소 같은 가축을 훔쳐서 오는 것이었다.
●결론
소규모 노략질로 말이 충분해지자 대무신왕의 시기에
기마민족형 적극적인 약탈이 시작 되었다.
부여,낙랑,대방을 비롯한 주변의 국가 다수에게 침략과 약탈을 감행했고, 전쟁터에서 화살촉,갑옷,병장기를 회수 하는 것은 고구려 약탈경제의 기본이었습니다.
2세기 말엽으로 접어 들면서 노략질은규모와 방식이 서서히 작아졌으며,
그동안 행한 노략질로 성장한 고구려군은 태조왕 시절에 약탈 중심의 군대가 아닌 정복전쟁을 위한 군대로 변모했고, 주변국들을 무너뜨리고 복속시키면서 영토를 넓히고 가축과 특산품의 산지를 확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