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리만 폰 산테르스 사건에 대해 알려주세요
제가 국제정치사 공부를 하는데 세계1차대전 부분에서 리만폰 산데르스 사건이라는 것이 나오는데 인터넷에 나온 검색 결과가 빈약해서 질문드립니다.1개의 답변이 있어요!
네이버에서 찾았는데
리만 폰 산데르스(Otto Liman von Sanders 리만 폰 잔더스 1855-1929)는 독일의 군인으로 터키군 원수를 지낸 인물이기도 합니다.
프로이센 왕국 출신으로 1874년 3월에 제115 보병 연대에 입대하여 1879년부터 제23 용기병 연대에서 근무했고 1881년 군사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1886년부터 제21 기병 여단의 부관으로 있었고 1887년부터 참모 본부에 근무했으며 1891년부터 제20 용기병 연대 중대장, 1893년부터 제22 사단의 참모로 있었습니다.
1900년부터 제6 경기병 연대장, 1906년부터 제15 기병 여단장, 1908년부터 제4 기병 감찰부 감찰관, 1911년부터 제22 사단장을 지냈으며 1913년 12월에 재 터키 군사 사절단장이 되어 터키군의 재편을 지도했습니다.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터키 최고 사령부 부속 전권 대표가 되었고 동시에 이스탄불에 주둔하던 제1 군단의 지휘를 위임받았지만 이는 러시아 외무성의 항의를 불러일으켜 외교 위기로 비화했습니다.
1915년 1월부터 터키 육군 총감이 되었으며 터키가 참전한 후 터키 제1군 사령관이 되어 흑해 연안의 방위를 위해 소아시아에 전개했습니다.
그 후 터키 제2군 사령관을 지냈고 1915년 3월말에 리만의 지휘하에 흑해 연안에 터키 제5군(5개 보병 사단 6만명)이 편성되어 1915년 2월과 1916년 1월의 다르다넬스 방위전에서 활약했습니다.
1915년 8월에 리만의 부대(14개 사단)는 갈리폴리에 상륙한 영불 연합군의 공세를 막아내며 결국 철수하게 만들었으며 갈리폴리에서의 승리 후 리만은 '동쪽의 힌덴부르크'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작전 종료 후 리만은 해협 지구에 머물며 이즈미르에 3만 6천명, 덴지리에 3만명, 디날에 3만명을 관할했으며 1916년 1월 10일에 독일 최고 무공훈장인 Pour le Merite 훈장이 수여되었습니다.
1918년 2월 에리히 폰 팔켄하임 장군을 대신하여 팔레스타인의 F군 집단(번개 부대라고도 불리움) 사령관으로 취임했는데 F군 집단에는 제4군(아흐메드 제말 파샤), 제7군(무스타파 케말 파샤), 제8군 등 합계 3만 4천명이 있었고 후에 제2군이 편입되었습니다.
1918년 2월말에서 3월초에 공세를 계획했으나 전력이 부족하여 실행하지 못했고 결국 터키군의 붕괴가 시작되자 에드문드 알렌비 장군 휘하의 영국군은 팔레스타인 작전을 개시하여 10월 1일에 다마스쿠스, 6일에 베이루트, 26일에 알레포를 점령하여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대부분을 점령합니다.
군집단은 격파되어 장병 대부분(7만 5천명)이 포로가 되었고 10월 5일 터키 정부는 연합국에 평화 협상을 요청해 10월 31일에 정전이 이루어집니다.
1918년 10월 31일 리만은 무스타파 케말 파샤에게 지휘관을 이양했으나 공식적으로는 1919년 3월 17일까지 사령관직을 유지했습니다.
확실하진 않지만 리만 폰 산데르스 사건이란 그가 독일의 군사 사절단임에도 불구하고 터키군의 지휘를 맡은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