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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검은꼬리63
흰검은꼬리63

이스라엘에 통곡의 벽이 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에 통곡의 벽이 있다고 합니다.

이 통곡의 벽은 무슨 건물이었습니까? 왜 그들은 거기서 통곡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역사학적으로 설명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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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금킹 시계퀸
    순금킹 시계퀸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스라엘의 통곡의벽은 유대인들의 성지이며 마지막남은 유대교의 대표 유물입니다

    예수가 죽은뒤 로마군은 유대인들을 많이 죽였습니다.

    그때 이벽은 목격을 하여 지금까지 일부가 남아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통곡의 벽 자리는 솔로몬 왕이 세운 예루살렘 성전이었으며 기원전 957년 솔로몬 왕이 세운 성전을 제1성전이라 불렀습니다.

    기원전 586년 신 바빌로니아가 침공하고 제 1성전을 파괴하고 유대인 상당수를 바빌론으로 끌고갔는데 이것이 바빌론 유수 입니다.

    나무로 만든 궤짝에 금박을 입히고 금장식을 다니, 보물을 찾는 병사들이 가만 놔두질 않았습니다.

    기원전 539년 아케메네스 왕조의 황제 키루스 2세는 바빌로니아를 멸하고 관용정책의 일환으로 바빌론에 끌려온 유태인들을 고향으로 보냅니다. 이때 키루스2세가 임명한 유대 지역의 총독은 즈루빠벨입니다.

    다리우스1세가지원하고 즈루빠벨이 주도하여 유대인들은 기원전 521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기원전 516년 새로운 예루살렘 성전을 완공아니 이를 제2성전이라 합니다.

    유대지역을 지배한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4세가 제2성전에 다른 신앙을 세우고 일부를 망가트리기도했으니 외제왕조의 전횡에 분개한 유다 마카베오의 주도로 혁명이 일어나며 제2성전에서 이교의 신상을 제거하고 망가진 부분을 수리합니다.

    후, 로마의 지원으로 헤로데 대왕이 즉위하고 이두매아, 에돔 출신으로 정통성이 부족했던 헤로데는 정통성을 세우려는 목적으로 제2성전을 증축합니다.

    로마 제국이 이스라엘을 통치하면서 지나치게 세금을 매기고, 유대교에 간섭하고 칼리굴라가 폭정을 휘두른 영향으로 서기 66년 ~73년까지 1차 유대전쟁이 벌어집니다.

    73년 티투스 장군은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유대인들의 정신적 구심점인 헤로데 성전을 헐어버립니다.

    로마 군대는 예루살렘 성전의 모든 건물을 헐고, 성전의 축대이기도 한 이방인의 뜰 부분의 서쪽 담장은 헐어버리지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옛 헤로데 성전 건물의 거쪽 축대 일부만 무너지지않고 남은것이 통곡의 벽입니다.

    즉 이러한 사건으로 뿌리를 잃은 유대인들이 남은 성전의 서쪽 축대 밖에 모여 통곡하니, 통곡의 벽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이스라엘의 통곡의 벽은 서벽이라고도 불리는데 헤롯왕이 지은 약 60미터의 고대 벽으로 성전산의 옹벽이지요 그 벽의 길이는 488미터가 되지만 맞은편에 세워진 집들이 많은 부분을 가리고 있는데요 오늘날에는 통곡의 벽에서 노출된 부분이 유대인 지역의 커다란 광장을 바라보고 있고 16세기부터 유대인들이 기도와 순례장소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현재 있는 통곡의 벽은 

    제2성전 이방인의 뜰 구역

    서쪽 축대를 가리킨다.

    뿌리를 잃은 유대인들이

    그나마 남은 성전의

    서쪽 축대 밖에 모여 통곡하였기에 '통곡의 벽'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예루살렘이 함락될 당시 벽이 진짜로 눈물을 흘렸다는 전설에서 따온 이름이란 설도 있다.

    ㅡ 출처: 나무위키

  •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통곡의 벽은 이스라엘 예루살렘 서쪽 성벽 일부의 명칭입니다.

    통곡의 벽에는 두가지 설이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 사후에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많은 유대인을 죽였고, 이런 상황을 지켜 본 성벽이 밤이 되면 통곡의 눈물을 흘렸다는 설입니다.

    또 하나는 유대인들이 성벽 앞에 모여 성전이 파괴된 것을 슬퍼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구약성서에 의하면 솔로몬왕은 예루살렘에 장엄하고 아름다운 성전을 세웠다. 그 후 성전은 전쟁 등으로 파괴되었으나, 헤로데스 왕이 예수 그리스도 시대에 재건하였는데, 그때의 성전 서쪽의 옹벽 일부가 지금도 남아 있다.


    예수가 죽은 뒤 로마군은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많은 유대인을 죽였는데, 이같은 비극을 지켜 본 이 성벽은 밤이 되면 통탄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인데, 중세 유대인들은 성전이 파괴된 날이라는 아부월(유대력 5월) 9일에 이 벽 앞에 모여 성전 파괴와 예루살렘 함락을 슬퍼하고 그 회복을 기원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예루살렘이 이스라엘과 요르단으로 분할되면서 이 성벽은 요르단측에 속하였으나, 1967년 6월의 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구시가지를 점령하여 이 성벽은 이스라엘로 넘어왔다.

  • 안녕하세요. 이기중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현재 있는 통곡의 벽은 제2성전 이방인의 뜰 구역 서쪽 축대를 가리킵니다. 뿌리를 잃은 유대인들이 그나마 남은 성전의 서쪽 축대 밖에 모여 통곡하였기에 '통곡의 벽'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예루살렘이 함락될 당시 벽이 진짜로 눈물을 흘렸다는 전설에서 따온 이름이란 설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건국으로 그네들의 오랜 숙원은 풀렸지만 아직 예루살렘 성전은 복구되지 못하였기에, 아직도 많은 유대인들이 이곳을 찾아 기도를 올립니다.


  • 안녕하세요. 최귀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통곡의 벽이 유대교 2차 성전의 마지막으로 남은 대표 유물이기도 하고 유대인들의 성지이기 때문입니다.


    이상 답변이 도움이 되었다면 추천 좋아요 부탁 드리겠습니다.

  • 안녕하세요. 지혜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로마 군대는 예루살렘 성전의 모든 건물을 헐어버렸지만, 성전의 축대이기도 했던 '이방인의 뜰' 부분의 서쪽 담장만큼은 헐어버리지 못하였습니다. 축대까지 무너트리기는 너무 힘들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했기 때문이죠. 이런 연유로 옛 헤로데 성전 건물의 서쪽 축대 일부만은 무너지지 않고 남았으니, 이것이 바로 통곡의 벽입니다.


    예루살렘이 함락될 당시 벽이 진짜로 눈물을 흘렸다는 전설에서 따온 이름이란 설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건국으로 그네들의 오랜 숙원은 풀렸지만 아직 예루살렘 성전은 복구되지 못하였기에, 아직도 많은 유대인들이 이곳을 찾아 기도를 올립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통곡의 벽이라고 불리우는 이유는 벽이 통한의 눈물을 흘렸기 때문이라고 하네여. 예수가 죽은 뒤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많은 유대인을 죽였는데, 이 같은 비극을 지켜 본 성벽이 밤이 되면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다른 하나는 유대인들이 성전이 파괴된 것을 보고 성벽 앞에 모여 사람들이 통곡했기 때문이라고 한다고 하는데여. 어떻든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됨으로 해서 그런 이름이 생겨난 것만은 분명하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