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개혁의 군제 개혁중 친위와 진위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을미개혁 당시 군제 개혁중
국내의 육군은 친위와 진위 2종으로 나눈다고 되어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친위와 진위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요?
친위의 역할과 진위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을미개혁 시기인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는 조선의 육군 개혁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개혁 과정에서 "친위"와 "진위"라는 용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친위(親衛)는 조선 시대에서 군대 내의 특정 부대를 가리키는 용어였습니다. 이는 일종의 근위대로, 왕과 왕가에 직접 충성하고 왕의 보호를 담당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친위는 왕과 권력을 공유하며 신분이 높은 군대로서 왕의 권위를 대표하고 왕의 개인적인 경호와 군사력 유지를 담당했습니다.
반면, 진위(鎭衛)는 조선 시대에서 일반 군대를 의미했습니다. 진위는 친위와 달리 국가 전체의 안보를 유지하고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진위는 지역 안보를 보장하고 외적인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군대를 구성하였으며, 지방의 특정 지역을 방위하는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즉, 친위는 왕과 왕가의 보호와 경호를 담당하고 권위를 대표하는 역할을 하며, 진위는 국가의 안보와 지역 안전을 위해 군대를 조직하고 방위 임무를 수행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진위대(鎭衛隊)는 1895년(고종 32)에 설치한 한국 최초의 근대적인 지방 군대이다. 을미사변 이후 들어선 제4차 김홍집내각은 훈련대를 해산하고, 육군을 수도와 그 주변지역에는 친위대와 시위대, 지방에는 지방대와 진위대로 재편했다. 처음에는 전주와 평양에 1개의 대대씩 배치하고, 각 대대는 2개의 중대로 구성했다. 대한제국 때는 외세의 간섭을 막고 정권을 안정시키기 위해 진위대의 병력을 대폭 증강했다. 1900년에는 강화, 수원, 대구, 평양, 북청, 의주에 본부를 두는 6개 연대를 설치하고, 각 연대는 3개 대대, 각 대대는 5개 중대로 구성하여 약 2만 명의 병력을 갖추었고, 후에 제주에도 진위대를 신설했다.
그러나 1905년 일본이 러일전쟁에 승리한 뒤 진위대의 병력을 감축해, 총병력이 3천 명도 안되었다. 그나마 1907년에는 중앙의 시위대를 해산한 뒤 진위대마저도 점차 해산해 나갔다. 이에 진위대 병사들은 해산령이 떨어지기 전에 먼저 의병투쟁에 합류하기도 하였다.
출처: 위키백과 진위대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앙에는 친위대 2개 중대를, 평양과 전주에는 진위대 각 1개 대대를 두어 육군을 편제하였는데 여기서 친위대는 왕궁을 호위하던 부대를 말하며 진위대란 지방을 수비하는 부대 병력을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