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제주 해녀들이 고되고 위험한 일인 물질을 하며 전복을 따야 했던 건 나라에 전복을 공물로 바쳐야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17세기 말까지 제주의 해녀들은 전복이 아니라 미역, 톳 같은 해초를 땄다고 하지요. 진상할 전복을 캐는 것은 포작인(浦作人)으로 불리는 남자들의 일이 였습니다. 궁궐은 물론 왕실 종친들의 전복 공출 요구를 이기지 못한 제주 남자들이 섬에서 뭍으로 탈출하는 일이 부지기수로 발생하고 수많은 포작인들이 착취와 수탈에 가까운 진상 부역을 피해 제주도에서 전라도, 경상도 해안으로 도망쳐 나갔다고 합니다. 포작인의 수는 급격히 줄어 들었고, 1694년 제주에 부임한 목사 이익태는 전복을 딸 남자가 부족하자 미역을 따던 해녀들에게 전복을 캐 바치도록 하기에 이른다고 하지요. 이렇게 해서 제주도에 해녀가 많아 진 것 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조선의 왕가의 이기심과 제주 관료들의 공명심이 제주조 해녀를 만든 것이라고 봐야 겠지요. 일본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