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가정삼도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요?
청나라의 역사를 알아보던 중에 가정삼도라는 것을 보았는데
도무지 알 길이 없네요
대략이라도 알고싶은데 찾아보니 나오질 않아서 전문가님들께 여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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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가정삼도(嘉定三屠)란 이성동은 여러 해동안 군대에 있었지만, 뛰어난 전적을 보여주지 못했다고합니다. 그러나 청나라에 투항한 후, 그는 남명으로 진격하는 선봉장으로 혁혁한 전공을 세우게 됩니다. 그는 순식간에 명군에서 청군으로 투항한 장수들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장수가 되고 청군이 남경을 점령하여 홍광정권을 멸망시킨 후, 기세를 타고 절강으로 쳐들어가게됩니다. 섭정왕 도르곤은 다시 한번 '체발령(剃髮令)을 내려, 점령지역내에서 머리카락을 체두변발하고, 의복을 청나라의복으로 바꾸도록 명하였습니다. 문무관리와 백성들에게 체발을 명하고 만일 따르지 않으면 군법으로 처벌했고 머리카락을 남기면 목을 남기지 못하고, 목을 남기려면 머리카락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라고 명했다고합니다. 이러한 조치는 명나라의 군민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게 되었고 이미 청나라에 투항했던 많은 주현에서 체발에 반대하여 반란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에를 들어, 강음의 군민은 염응원등의 지휘하에 반란을 일으켜 81일간이나 성을 걸어잠그고 버티며, 청군을 많이 사살하여, 청나라조정을 뒤흔들었다고합니다.절강의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체발을 거부했으며그들은 후동증등이 주도하여 의군을 조직하여 반항하였습니다. 당시 오송에 주둔하고 있던 이성동은 그 소식을 듣고, 청나라조정에 충성을 표현할 좋은 기회라 생각했고 그는 즉시 병마를 이끌고 가정으로 갑니다. 10여일간의 전투를 거쳐, 가정성을 함락시키고, 그 후 성안이 군민들에 대하여 참혹한 살륙을 벌이게 됩니다. 사서 기록에 따르면 청군은 집집마다 쳐들어가고, 좁은 골목이나 외딴 거리까지도 모조리 수색했고 풀숲도 반드시 장창으로 마구 쑤셨다고합니다. 시민들 가운데 목을 맨 자, 우물에 투신한 자, 강물에 투신한 자, 얼굴에 피칠을 한 자, 사지가 잘린 자, 칼에 베었어나 아직 죽지 않아 손발이 움직이는 자들이 있어, 골육이 낭자했다고합니다. 칼소리가 원근에서 가득 들리고, 목숨을 구걸하는 소리가 시장에서처럼 많이 들렸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룻동안의 도살로 가정성은 개략 3만여명이 도살되었고 피해자의 시신이 강물의 흐름을 막을 정도였다고합니다. 이런 참혹한 지옥같은 광경은 겨우 '가정삼도' 중의 '제일도'였다고합니다. 그 후 한달내에 이성동은 다시 병력을 이끌고 가정성에 대하여 '제이도' '제삼도'를 진행했다고합니다. 두 손에 명나라군민의 피를 가득 묻힌 이성동은 청나라조정의 칭찬을 받고 일약 강남순무(江南巡撫)로 승진했다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