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조선시대 화가 김홍도는 그림으로 떼돈을 벌었다는데, 어째서 말년에는 자녀 학비도 못 줄만큼 가난해진 것인가요?
조선시대 화가 김홍도는 뛰어난 그림실력으로 작품을 팔아서 떼돈을 벌었다는데요. 어째서 말년에는 자녀 학비도 못 줄만큼 가난해진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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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김홍도가 말년에 생활이 어려워 진 것은 바로 정조의 죽음 입니다. 김홍도를 총애했던 정조가 1800년 사망한 이후 상황은 빠르게 변했는데 김홍도는 1804년 5월 5일, 생애 처음 녹취재에 응하게 된다고 하는데 당시 김홍도는 중인 출신 이지만 정도의 총애로 단 한번도 화가 시험을 보지도 않고 그림을 그려왔습니다. 당시 김홍도의 나이 60세에 도화서에서 시험을 치뤘다고 합니다. 1800년 정조 사망 이후 1년 반 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고 자신을 아껴주던 후견인의 사망에 충격이 컸을 것입니다. 평생 왕실의 화원으로 일하고, 양반가의 그림 주문도 많아 부를 쌓았지만 말년엔 아들 교육비를 대기 힘들 정도로 가난해졌고 김홍도는 '추성부도'를 그린 직후의 편지에서 "아들의 교육비를 댈 수 없으니 돈을 빌려달라"고 친구에게 부탁할 정도로 곤궁했다고 전해 집니다.